야식이 아닌 위로를 원했던 밤

by 푸린



밤이 되면, 이상하게도 허기가 졌다.


그 허기는 ‘배고픔’이라기보다는 마음 어딘가가 허전한 느낌에 가까웠다.

하루가 끝나는 저녁이면, 불완전한 채로 남겨진 감정들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괜찮았을까?”, “이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내일도 버틸 수 있을까?”


답 없는 질문들이 마음속에 쌓이고 쌓이면, 손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향했다. 배달 앱을 열고, 메뉴를 고르고, 클릭하고, 기다리는 일련의 과정이 시작됐다. 그 순간은 단순히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올라서가 아니었다. 지금 이 공허함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식사’가 아니라 ‘위안’이라는 것을.


나는 그저 뜨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몸속을 데워주길 바랐다. 무언가를 씹고, 삼키고, 배를 채우는 행위는 마치 불안과 초조를 잠시나마 가둬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음식이 들어오는 만큼 마음속 빈틈도 메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안정감은 너무나도 짧았다. 불안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사이, 그 뒤를 후회가 잽싸게 따라왔다.


텅 빈 그릇, 묵직한 배부름, 그리고 줄어든 통장 잔고.
“또 이랬네…” 하고 고개를 떨구는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더 깊은 자기혐오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혐오는 곧 다시 불안으로 변했고, 그 불안은 또다시 음식으로 이어졌다. 감정–행동–죄책감이 하나의 고리를 만들어 나를 단단히 조여왔다.




사람들은 쉽게 말했다.
“그냥 안 시키면 되잖아.”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단순한 스위치가 아니다.

특히 조울증을 앓는 나에게, 감정의 진폭은 너무나 크고 가파르다.
조증에 가까운 날에는 에너지가 넘쳐흘러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그럴 때 음식은 빠르고 확실한 자극이었다. 반대로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는 날에는, 무기력과 허무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공허함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배달 버튼은 나의 ‘가장 손쉬운 구명줄’이 되었다.


조울증은 내게 두 가지 얼굴을 번갈아 내밀었다. 하나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속삭이는 과잉의 얼굴,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단정 짓는 침잠의 얼굴. 음식은 그 양쪽 얼굴 모두에 잘 어울리는 위안이었다. 기분이 들떴을 때는 맛있는 걸로 나를 축하했고, 기분이 꺼졌을 때는 따뜻한 음식으로 나를 위로했다.
문제는, 그 어느 경우에도 결과는 같았다는 것이다. 순간의 안정 뒤에 몰려오는 죄책감과 자기혐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였지?”
짜장면도, 치킨도, 카페 디저트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하루의 끝에 누군가가 “괜찮다”, “잘했다”,
“여기까지 온 게 대단하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오늘 하루를 버텨낸 것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그리고 그 마음을 안아주길 바랐다.
사실 꼭 안아주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순간에, 누군가가 항상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혼자서도 버틸 수 있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요즘 나는 작은 시도를 한다.


배달 버튼을 누르기 전에 냉장고 문을 열어 남은 반찬을 꺼내본다. 배가 고프기 전에 미리 밥을 해두고,
배달 생각이 날 때는 김에 밥을 싸서 한 그릇 먹는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 날도 생긴다.
‘먹지 못해서 우울한 시간’이 아니라, 감정과 마주해도 무너지지 않는 나를 시험해 보는 시간이다.


물론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배달 버튼을 누를 때도 있고, 먹고 난 뒤 후회로 몸이 무거워지는 날도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있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채우려고 음식을 찾는지, 그 마음의 모양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음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위로를 찾는 법을 배우고 있다. 불안은 먹는 것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불안은 참 똑똑하다. 내가 먹는 걸 참기 시작하면, 그는 곧 다른 틈을 찾아 들어왔다.
그 틈은 쇼핑일 때도, 잠들지 못하는 밤일 때도 있었다. 조울증은 이렇게 모양을 바꿔가며 나를 시험한다.
그리고 나는, 그 시험지를 하루하루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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