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지갑이다.
과소비는 내가 가진 양극성장애 2형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특히 경조증을 겪을 때 가장 크게 드러났다. 돈을 쓰는 일은 곧 빚이 되었고, 빚의 양상에 따라 내 병의 흐름 또한 달라졌다.
처음 조울증이 발병했을 때, 내 카드값은 91만 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로 그쳤다는 게 오히려 기적 같았다. 당시 나는 첫 회사를 퇴사하고 이직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남들도 다 겪는 퇴사와 취업 준비였는데, 왜 나는 그렇게 크게 아팠을까. 설명하려 해도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남들보다 아픔을 크게 느끼는 성향, 그리고 겪어낸 경험들이 내 감당의 그릇보다 더 컸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알바 두 개를 병행하며 오히려 수입은 첫 회사 시절보다 100만 원 이상 많았다. 그래서 생활비나 카드값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고, 빚은 그리 커지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물욕이 거의 없었고 취업 준비에 필요한 비용 외에는 지출이 많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재발 때 상황은 달랐다. 500만 원의 카드빚이 있었다. 8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빚의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누구에게도 내 어려움을 털어놓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결혼을 준비하면서 모아둔 돈이 없다는 사실과,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카드빚 때문에 관계가 흔들리기도 했다. 물론 그것이 헤어짐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그때 처음으로 ‘빚’이 내 삶의 중요한 변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헤어진 뒤 2년 동안 나는 비만과 빚, 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식욕을 조절하고, 다양한 취미활동에 도전하며, 때로는 30km를 걷고 10km 마라톤에 참가하기도 했다. 살은 20kg 가까이 빠졌지만,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 순간의 공허함은 여전히 크고 무거웠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것을 잊으려 했고, 관계 유지를 위해 지출은 더 늘어났다. 결국 빚은 500만 원에서 4000만 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설상가상으로 잦은 술자리와 운동 부족이 겹치면서 허리디스크가 찾아왔다. 쓰러진 나는 무려 2년 동안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치료비와 이사 비용까지 겹치자 빚은 더욱 불어났고, 결국 개인회생까지 고민했다. 견디다 못해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간신히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났다. 나는 더 이상 ‘내 의지만으로 안 쓰면 되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기존의 전화상담을 대면상담으로 전환했다.
몸과 마음은 동시에 무너졌다. 허리 통증은 마음의 힘듦을 다시 불러왔고, 완치됐다고 믿었던 조울증이 재발했다. 상담사분은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고 수차례 설득했지만, 나는 두 달 넘게 버텼다. 결국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여러 병원을 전전했고, 돈은 계속 새어나갔다. 돈이 왜 새어나가는지를 들여다보기로 마음을 굳게 다잡은 지 6개월, 나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회복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무작정 활동을 늘리거나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대신, 온전한 휴식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 것이다.
사실 정답은 아직 모르겠다. 여전히 찾아나가고 있지만 지금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이 나의 큰 위로가 된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조용히 다가와 주는 존재가 주는 정서적 안정감은 깊다. 또한 나에게 해로운 인연은 더 이상 붙잡지 않는다. 소수의 깊은 관계만을 지키며, 그 안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꾸준한 상담과 진료를 이어가며 현재에 집중하려 한다.
지금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 자신을 뒷전으로 밀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나를 희생하지 않는다.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통장 잔고에서도 증명되기 시작했다. 말뿐이 아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변화였다. 놀랍게도 이제는 돈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