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by 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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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의 모습은 언제나 내 마음의 풍경을 닮아 있다. 방을 치우는 방식, 물건을 쌓아두는 습관은 결국 나라는 사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는 물건을 각자의 성격에 맞게 제자리에 두려고 애쓰는 편이다. 눈에 보이는 공간만큼은 깔끔히 유지하고 싶어서 책상 위를 비우고, 침대 시트를 반듯하게 펼쳐두곤 한다. 그러나 서랍을 열거나 팬트리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차 있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과할 정도의 물건들이 차곡차곡 혹은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필요한 물건이 손에 바로 잡히지 않으면 쉽게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혹시 몰라 쟁여두는 습관은 도라에몽의 주머니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그것들이 한 해 두 해 쌓이다 보니 결국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정리된 집이다. 손님이 찾아와도 “생각보다 깨끗하다, 정리를 잘한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 말이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어쩌면 정돈된 외양은 내 마음을 이끌어가기 위한 일종의 장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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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마음은 늘 정돈되어 있지 않다. 흐릿한 날이 더 많고, 감정의 홍수 속에 휘말려 허우적댈 때도 많다. 그럴 때 침대 모서리를 잡아 이불을 팡팡 털어내고 반듯하게 내려놓는 순간, 내 마음도 조금 내려앉는다. 냉장고 안이 배달 음식 용기와 자잘한 잔반통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면 나는 내 상태를 의심한다. 정리할 여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마음이 무너져 있다는 신호인지.


그런 날은 몸도 마음도 무겁다. 허리가 아파 움직이기 힘들 때, 심한 생리통으로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 때, 혹은 연인과의 이별처럼 감정적인 상실을 겪을 때. 집안일은 뒤로 밀리고 방은 금세 어질러진다. 예전에는 그런 나를 자책했지만, 이제는 무리하지 않는다. 방을 난장판으로 두기도 하고, 대신 작은 계획을 세운다. 일주일에 한 번만 치우자, 오늘은 책상 위만 정리하자.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눈 이 습관이야말로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손잡이가 된다.


조울증을 앓으며 배운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울기에 접어들면 서랍 속 잡동사니처럼 마음이 뒤죽박죽 흩어지고, 정리 하나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누워 있을 때가 많다. 반대로 경조증이 올라올 땐 오히려 과도하게 치우거나 물건을 쓸어 담듯 사들여 마음의 균형이 흔들린다. 정리라는 행위는 그래서 나에게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라, 병의 파동을 감지하는 지표이자 회복을 위한 루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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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통증 또한 내 일상을 좌우한다. 통증이 심할 땐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정리도, 산책도, 심지어 샤워조차 버거워진다. 그러나 고통을 억지로 견디며 모든 것을 해내려고 하기보다, ‘오늘은 책 한 권 꽂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고, 다시 다음 날을 버틸 힘이 된다.


정리는 결국 내게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해내라는 메시지를 건넨다. 그러니 서랍 속에 여전히 잡동사니가 남아 있어도 괜찮다. 대신 침대 시트를 털어 하루를 다잡고, 냉장고 속 반찬통 몇 개만 비워내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진다. 그것이 곧 나의 회복 루틴이다.


내 마음의 책상은 언제나 완벽히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연필 한 자루를 제자리에 두는 일, 식탁 위 접시 하나를 씻어내는 일은 곧 내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일상적 약속이 된다. 조울증의 파도도, 허리의 통증도, 결국은 이런 사소한 정리 속에서 나는 다시 나를 세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마음의 책상 앞에 앉아, 조금은 어지럽고 조금은 정리된 채로 하루를 살아간다. 완벽히 비워내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것, 그리고 다시 살아낼 수 있는 작은 힘을 내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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