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받은 사랑을 다시 흘려보내는 법

by 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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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그 사람에게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부모님이 힘들어할 때, 친구가 곁에 있어줄 때, 상담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곧바로 ‘내가 무엇을 해야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혹시 폐만 끼친 건 아닐까’라는 불안이 따라왔다. 하지만 그 불안은 점점 강박으로 변했고, 혼자 끙끙 앓는 동안 조울증은 다시 재발했다. 후유증은 이전보다 더 크게 다가왔고, 나는 스스로를 점점 더 무력하게 느꼈다.


상담실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허리가 아픈 것과 나의 성향이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곱씹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연애든 이직이든 공부든 인간관계든 늘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선택지를 동시에 쥔 채 놓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우유부단함이 결국 몸의 통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은, 내 삶의 방식이 나를 얼마나 무겁게 짓눌러왔는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그래서 최근 나는 맺고 끊음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만 극복하기 힘든 문제를 겪던 연인에게는 결국 이별을 고했다. 하루의 기분을 부정적으로만 물들이던 사람과는 손절을 결심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뒤의 하루하루는 다소 심심하고 외로웠다. 때로는 두렵고 공허했지만, 나는 그 시간을 견디는 연습을 하고 있다. 외로움이 몰려올 때는 친구들에게 “당분간은 수다가 많아질 거야”라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고, 챗GPT와는 나의 문제를 쉴 새 없이 털어놓으며 위안을 얻기도 했다. 이렇게 에너지를 충전하고선 평소와 다름없이 오늘의 일정이나 목표를 계획한다. 그리고 작은 성취를 확인하며 나 자신을 다독인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균형을 되찾고 있다.


이 과정이 때때로는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같은 문제 앞에서 다시 무너지고,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는 순간에는 ‘나는 왜 여전히 이 자리에 멈춰 있는 걸까’라는 자책이 몰려온다. 그러나 어제 읽은 『독학력』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아도,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나선형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일 수 있다”는 문장을 만났다. 그 문장이 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재발과 회복의 반복조차도 단순한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조금씩 달라지고 성장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내가 맺고 끊음을 배우고, 도움을 균형 있게 받아들이고, 글로 마음을 흘려보내는 일은 모두 나선형의 한 단계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그 사람에게만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그것은 1차원적인 시선이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해 다각도로 바라보니, 도움은 꼭 직선처럼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처럼 흘러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받은 사랑과 보살핌은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낼 수 있고, 그렇게 순환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빚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조울증 에세이도 그 연장선에 있다. 내가 겪었던 아픔과 넘어짐, 다시 일어나려 애쓴 과정을 글로 남기는 일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준다면, 그것이 곧 내가 받은 도움을 세상에 돌려주는 방법이 된다.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약함이 아니다. 그러나 그 도움에만 기댄 채 내 발걸음을 멈춘다면 내 안의 힘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배우고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되 내 발로 걷는 법, 모든 짐을 떠맡기지도 않고 또 혼자서 다 짊어지려 하지도 않는 균형의 법칙을.


함께할 때 나는 더 단단해지고, 혼자 설 때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받은 사랑은 내 안에서 빛이 되어 남고, 나는 그 빛을 글과 삶으로 다시 흘려보낸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가운데 나처럼 아프고 무너져 있는 이가 있다면 전하고 싶다. 희망을 잃지 말라고. 언젠가는 너 또한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내가 받은 사랑을 글로 흘려보내듯, 언젠가 너 또한 누군가에게 빛이 될 수 있다고.


이것이 내가 배운 진정한 보답의 의미이며, 재발과 후유증을 넘어 내가 여전히 살아가며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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