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따금 현타가 올 때마다 ‘답 없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다.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하면 가까운 이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 같아?” 하고 묻기도 했다. 돌아온 대답은 크게 두 가지였다. ‘걱정’과 ‘열정’. 오늘은 그중에서도, 과한 열정이 불러온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늘 ‘쉬는 것=도태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멈추지 않고 걸어가거나 뛰지 않으면, 제자리에 서 있는 러닝머신처럼 곧장 뒤로 밀려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대 내내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회계 자격증은 단번에 땄지만, 남들은 한 달이면 끝낸다는 토익은 30대가 되어서야 원하는 점수를 얻었다. 수차례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도전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두 번 떨어졌고, 지금은 한 연구소에서 여섯 해째 다니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친구들은 이미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반면 나는 여전히 이직을 고민하는 직장인일 뿐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달리는데도 사회가 말하는 때를 맞추지 못할까? 왜 평범하게 사는 게 이토록 어려울까?’ 수많은 날들이 ‘일단은 해보자’라는 말속에 흘러갔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마음이 늘 달려 나가다 보니 결국 몸이 그 속도를 감당하지 못했다. 20대에는 매일 핫식스를 마시며 밤샘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잠을 줄이는 게 시간을 버는 것’이라 믿으며, 미래의 내가 알아서 감당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30대가 되자 후폭풍이 몰려왔다. 먼저 정신이 무너졌다. 조울증을 겪으며, 조현병이라 착각할 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었다. 다음은 허리였다. 디스크로 쓰러진 뒤 2년 가까이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지냈다. 꾸준히 관리해 나았던 조울증도 그 무렵 다시 찾아왔다.
그 시기 나는 자신을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나를 깊은 열등감으로 몰아넣었다. 움직일 수 없는 몸 때문에 상담을 받으며 매주 해야 할 일을 미뤄야 했는데, 그 과정은 결국 내 마음의 속도를 몸에 맞추는 연습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줄이는 일이 내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내가, 강제로 멈춰야 했기 때문이다.
누워 지내는 동안 공부나 독서도 쉽지 않았다. 대부분 멍하니 누워 있다가 잠들거나, 자책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재활만큼은 놓지 않았다. 기어가서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 필라테스에 나갔고, 몸이 조금 나아지자 허리를 부여잡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교육을 들으러 다녔다. 그 과정에서 라테아트와 그림책 전문가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상담을 받으며 ‘쉬지 못하는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고,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내게 그것은 30대에 까맣게 변한 퇴행성 디스크였다. 아마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안고 살아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성격을 단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충동적이고, 자극을 추구하며, 쉽게 질려버리는 성향을 다스리는 것 말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일조차 내게는 쉽지 않다. 20대에는 살이 조금 찌는 정도로 그쳤지만, 30대가 되자 몸 구석구석에서 예상치 못한 통증이 나타났다. 종합병원처럼 이곳저곳 고장이 났다. 재활을 꾸준히 하고, 식습관을 관리하는 것은 눈앞의 문제 해결일 뿐, 근본적인 원인 해결은 아니었다.
진짜 과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마음을 다스리고, 몸과 마음의 속도를 맞추는 일. 전력질주와 벼락치기만으로는 인생을 버틸 수 없다. 결국 그 방식은 언제고 나를 넘어뜨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만히 있는 시간, 최소한만 하며 때를 도모하는 순간들을 견디고, 나아가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될 때 나는 비로소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