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하는 날에도 우리는 멀리 간다

<"감정만 30년을 연구했다." ㅣ김주환 교수 유튜브>

by 푸린


왜 매번 비슷한 상처에 무너질까.
이번에도 그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나는 할 수 있다.


* 만트라(Mantra)는 영적 또는 물리적 변형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발음, 음절, 낱말 또는 구절을 의미한다.





나에게는 부적 같은 문장이 있다. 사람들은 이를 '만트라(Mantra)'라 부른다. 영적인 변형을 일으키는 구절이라지만, 나에게는 그저 하루를 버티기 위한 절박한 주문에 가까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입술 끝으로 이 문장을 밀어낸다. 하지만 문장은 허공에서 힘없이 흩어지고, 마음은 예고 없이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주문만으로 평온을 얻기에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내 안의 소음은 그보다 더 컸다.


정신적으로 무너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실로 보잘것없다. 잘 자고, 잘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내게는 에베레스트를 넘는 일만큼이나 고단한 과업이 된다. 억지로 숟가락을 들고, 억지로 눈을 감고, 억지로 가만히 머무는 일. 그 사소한 일들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에너지가 바닥난다. 나는 이미 그 고단함을 수없이 겪어왔음에도, 매번 새로운 시련처럼 같은 자리에서 다시 무너진다.


“또 시작이구나.”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그 한숨 끝에는 미약한 믿음이 매달려 있다. 더한 폭풍우 속에서도 나는 가라앉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이 지독한 파도 역시 언젠가는 해안가에 닿아 소멸할 것이라는 믿음. 그 가느다란 끈 하나로 나는 시간을 견딘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반복해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걸까. 남들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왜 나만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는 기분일까. 그러다 깨달았다. 나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같은 자리를 맴돌며 '나'라는 사람의 무늬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중이었다. 매번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그 지점의 아픔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반드시’, ‘절대’, ‘무조건’이라는 단어로 나를 옥죄어 왔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단단한 콘크리트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단단한 것은 강한 충격에 한순간에 부서진다. 오히려 유연한 가지가 바람에 휘어지며 살아남듯, 나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이 아니라 '허용'이었다. 이제는 나를 채찍질하는 대신, 내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따라가 보기로 했다. 슬프면 슬픈 대로, 무기력하면 무기력한 대로 내버려 두는 연습.





떠날 수 없는 날에도 우리는 어딘가로 향한다. 몸은 좁은 방 안, 낡은 이불 속에 머물러 있어도 마음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다. 나는 이 보이지 않는 이동을 ‘여행’이라 부르기로 했다. 여권도, 비행기 티켓도 필요 없다. 우리는 매일 슬픔의 골짜기로, 불안의 사막으로, 혹은 아주 잠깐의 평온이라는 오아시스로 이동한다. 그 모든 움직임이 하나의 여정이라면, 나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고독한 여행가였는지도 모른다.


이 글은 나를 놓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멀리 떠나기 위한 화려한 모험담이 아니라, 내 안의 심연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생존 지침서다. 에세이가 끝날 즈음엔 나와 당신 모두, 각자의 만트라를 단순한 주문이 아닌 삶의 감각으로 '알아챌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마음을 붙들어줄 단 하나의 문장은 무엇인가요?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늘 저녁은 맛있게 먹자" 같은 사소한 문장이 때로는 우리를 구원하니까요.




이쯤에서 처음에 제시했던 만트라가 기억이 나나요?


침착하고 차분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나는 할 수 있다.


당신의 만트라는 무엇인가요?



이번 글은 김주환 교수의 지식인사이드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HU1oAYTqj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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