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못한 채 부딪힌 마음들에게

<I'll never love again, WOODZ ㅣ노래>

by 푸린


나는 남들보다 세상의 주파수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누군가의 가벼운 한숨 소리에서 거대한 절망을 읽어내고, 스쳐 지나가는 눈빛에서 차가운 거절을 감지한다. 이 섬세한 감각은 기쁠 때는 세상을 찬란하게 만들지만, 슬픔이 닥칠 때는 나를 가장 깊은 수면 밑으로 밀어 넣는다. 슬픔이 몰아닥칠 때 나는 저항하는 대신 잠수하는 쪽을 택한다. 수면 위에서 허우적거리기보다, 차라리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그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편이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숨 참는 법조차 잊은 채 그 무게를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턱이 빠질 듯한 통증이 찾아온다.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아, 내가 한참을 잠겨 있었구나. 슬픔을 알아채고 나면 서둘러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어둠 속에서 가사 없는 곡들을 틀어놓는다. 'Acoustic Cafe'의 서정적인 선율이나 '정재형'의 고독한 피아노 소리는 명확하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들을 안전하게 만져볼 수 있게 해주는 손잡이가 된다.





바닥인 줄 알고 발을 디디면 그 아래 더 아득한 심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이 없는 어둠 속에서 한없이 추락하며 나는 절망했다. 도대체 이 슬픔의 끝은 어디인가. 하지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감싼다. 죽을 줄 알았는데, 이 깊은 슬픔 속에서도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내게 '아가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 아가미는 시련이 내게 준 서글픈 전리품이다. 남들은 압도당해 숨 가빠할 심연에서도 나는 고요히 눈을 뜨고 타인의 고통을 읽어낸다. 시련이라는 거친 포장지에 싸여 배달된 이 선물은 나를 조금 특별한 관찰자로 만들었다.


취업 준비생 시절, 앞날이 캄캄해 찾아간 무당집에서 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방울 소리와 날카로운 신의 목소리를 예상했지만, 내 귀에 들린 것은 한 인간의 젖은 비명이었다. 향 냄새가 눅눅하게 가라앉은 방에서 나는 오히려 그의 손을 잡고 고달픈 인생사를 들었다. 업으로 삼은 무속인의 삶 뒤에 숨겨진, 스스로가 원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살아내야만 하는 한 인간의 고독이 내 가슴을 쳤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실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상담사의 질문에 답하던 나는 어느덧 그의 목소리에 담긴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고, 그의 아픔을 경청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를 '공감 능력'이라 부르며 상담가의 길을 권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한다. 나에게 공감이란 아름다운 배려이기보다 지독한 '감정 분리의 실패'에 가깝기 때문이다. 타인의 슬픔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와 내 것처럼 타오르는 고통을 나는 아직 온전히 다루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사람들의 슬픔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곤 한다. 대문자 F였던 내가 T라는 소리를 듣는다. 합리적이긴 하지만 공감은 못한다는 얘기를 듣기까지 한다. 사실 내 안의 에너지가 바닥이나 타인의 심연까지 들여다보기를 포기한 것인데 말이다. 이렇게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날엔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며 기꺼이 비겁해지기를 택한다. 타인의 빙산을 짊어질 여력이 내게는 남아있지 않다.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는 우리가 평생 써야 할 검은 돌과 흰 돌이 주머니 속에 정해져 있다는 비유가 나온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쏟아진 무거운 검은 돌들을 하나씩 처리하느라 잠시 멈춰 서 있다. 예전에는 이 돌들을 빨리 치워버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제는 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돌을 치우는 힘이 아니라, '이 무거운 돌들을 들고 있느라 네가 참 많이 힘들구나'라고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자비라는 것을.


뇌과학적으로 우리 뇌는 부정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무에 부딪히지 마”라고 생각하는 순간, 뇌는 '나무'를 가장 먼저 시각화하고 온 신경을 나무에 집중시킨다. 하지만 “나무 사이의 길에 집중하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통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시선을 두는 곳에 뇌는 길을 낸다.





우리는 서로에게 온전히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심연이 너무나 깊고 독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써 닿고자 했던 그 간절한 시도는 결코 헛되지 않다. 그 노력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와 같은 주파수를 가진 누군가를 내 삶으로 불러들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아가미로 숨을 쉬며, 나를 알아가는 이 깊은 바다를 유영한다.


Last Carnival - Norihiro Tsuru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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