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지만 현재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실패를 통과하는 일, 박소령ㅣ책>

by 푸린


나는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었지만, 여전히 ‘현재’라는 시간 앞에서는 아이처럼 서툴렀다. 최근 나는 오래전 버렸다고 생각한 못된 습관 하나를 반복했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을 내뱉으며 나 자신을 난도질한 것이다. 이 문장은 나를 보호하는 방어막인 동시에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가장 마음 쓰였던 건 인간관계의 정리였다.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는 오직 나의 생존과 회복만을 위해 오랜 시간 소중히 가꿔왔던 관계 하나를 통째로 끊어냈다. 그 단호함이 누군가에겐 배신으로, 누군가에겐 비겁한 도망으로 비쳤을 것이다. 죄책감이 나를 덮쳤다. '결국 나는 문제가 생기면 피하기만 하는 사람일까?' 현재의 내 모습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거울을 보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하지만 그 차가운 침묵 뒤에는 나만의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내 안의 불꽃이 제어되지 않을 때, 서툰 말과 행동으로 소중한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할퀸 사람과 똑같은 괴물이 되어 복수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그 침묵은 타인에겐 냉정한 '단절'이었겠지만, 나에겐 인간다운 품격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거리두기'였다.




진정으로 힘든 순간에는 현재에 집중할 수 없다. 삶이 와르르 무너지는 사고나 질병, 예기치 못한 실패 앞에 선 이에게 “현재를 즐기라”거나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으라”는 조언은 때로 잔인한 폭력이 된다. 현재를 따뜻하고 비판 없이 바라볼 마음의 근육이 소실되었을 때, 현재는 오히려 고통과 무기력을 증폭시키는 ‘안전하지 않은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시간 조망(Time Perspective)' 이론은 과거의 긍정적 기억과 미래의 희망, 그리고 현재의 인식이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핵심은 ‘현재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현재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나를 자책해 왔다. 하지만 지금 내 현재는 아직 잿더미가 채 식지 않은 전쟁터와 같다. 그곳을 억지로 들여다볼수록 나를 평가하고 비난하는 목소리만 커질 뿐이었다.


그럴 땐 잠시 과거와 미래의 힘을 빌려도 된다. 나는 너무 힘들 때면 “내가 이런 지독한 것들도 결국 버텨냈지”라는 승리의 기억을 꺼내 본다. 그 기억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헝클어진 머리를 바짝 묶으며 정신을 차리게 하는 연료가 된다. 진정한 회피는 과거에만 머물러 현실을 외면하거나, 미래를 공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박소령의 글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따금 나는 나 자신을 난기류에 휩쓸린 비행기를 모는 조종사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심한 난기류에 온몸이 덜덜 떨리더라도, 조종간을 꽉 붙잡고서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하고 말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다. "나는 도착할 수 있다."라는 막연한 믿음보다 "나는 도착하고야 말겠다."라는 굳은 각오가 나에겐 이를 악물고 버티게 하는 연료였다. 드디어 땅에 착륙했던 날의 안도감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하기보다, “괜찮아지고야 말겠다”라고 이를 악무는 사람에 가깝다. 이건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나의 선언이다.





불안이 통제 불능으로 끓어 넘칠 땐 신경안정제의 도움도 기꺼이 받는다. 의지로만 이겨내려 발버둥 치다 한계에 몰렸던 나에게 의사는 말했다. “일단 약으로 뇌를 쉬게 해줍시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화학적 반응입니다.” 내 상태를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나를 비난의 대상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옮겨놓는 첫걸음이었다.


환경을 바꾸는 노력도 병행한다. 나는 오전 7시, 아직 세상이 깨어나기 전의 조용한 카페를 좋아한다. 잔잔한 재즈가 흐르고, 적당한 거리를 둔 사람들이 각자의 하루를 경건하게 준비하는 곳. 함께 있으나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고, 고립되지 않았으나 침범당하지 않는 그 공간의 결이 나를 진정시킨다. 그제야 나는 다시 오늘 할 일을 정리하고, 아주 작은 행동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결국 나를 치유하는 것은 다시 사람이다. 내가 지독하게 아픈 것도 실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침묵하며 숨을 고르는 동안, 감사하게도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이들은 내 부재를 오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음을, 네가 돌아올 자리는 따뜻하게 데워져 있음을 무언의 온기로 전해주었다.


과거와 미래로 떠났다가 다시 오늘로 돌아올 수 있다면 그것은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더 나은 현재를 맞이하기 위한 전략적 후퇴다. 여전히 나는 불안에 떨고 흔들린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척 등을 돌리지는 않는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도망치기만 하는 사람도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끝내 다시 하루의 조종간을 붙잡는 사람. 나는 나를 지키는 법을, 아주 서툴고 느린 방식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마주할 준비를 마쳤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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