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데 괜찮은 순간들

<여행가, 권진아|노래>

by 푸린



예전의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것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요가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불안이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그 불청객을 쫓아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붙잡아야 했다. 의미 없는 단톡방을 기웃거리거나, 목적 없이 쇼핑몰 화면을 넘기며 혼자라는 상태를 지우려 애썼다. 타인의 소음으로 내 안의 정적을 덮어버리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그 빈 캔버스 위에 어떤 색깔을 칠할지 설레는 마음으로 고민하게 된다. 이 기분 좋은 변화의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가수 권진아의 콘서트 티켓을 예매한 날이었다. 예전 같으면 공연만 보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겠지만, 이번에는 며칠의 시간을 통째로 비워두기로 했다. 친구 집 근처에 숙소를 연박으로 잡고, 하루만 머무는 이방인이 아니라 그 동네의 공기를 잠시 살아보는 거주자가 되어보기로 한 것이다. 마침 그 시기에 근처에서 벚꽃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일정표를 채워 넣는 손길이 분주해졌다.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지도. 평소 애정하던 독립 서점들을 점찍어두고,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북스테이 공간을 다시 검색했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고 동선을 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었다. 허리디스크 때문에 거의 3년 동안 집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했던 나에게, 스스로 이동 경로를 결정한다는 건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일과도 같았다. 보조기와 침대에 묶여 있던 시간 동안 간절히 바랐던 '보통의 산책'이 이제 내 손안에 들어와 있었다.


기분 좋은 예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뮤지컬 ‘어쩌다 해피엔딩’이 수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예매 버튼을 눌렀다. 그 근처에는 내가 아플 때마다 늘 대전까지 먼 길을 달려와 주었던 소중한 친구가 살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 친구의 동네로 가겠다고 먼저 말을 건넸다.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미안함이 쌓였던 관계에서, 기꺼이 내가 먼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뭉클한 해방감을 주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티켓팅 운도 따라주었다.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던 '피켓팅'의 세계에서, 앞자리가 내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미도 배우가 출연하는 날이었다. 화면에 뜬 좌석 번호를 보며 나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거창한 삶의 성취는 아니어도, 우주가 나에게 "이제 마음껏 즐겨도 돼"라고 윙크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과정을 준비하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제 이 시간을 누구와 공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혼자이기 때문에 내 안의 감각들이 더 선명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다음에 보게 될 장면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여정의 준비는 밖으로만 향하지 않았다. 그 사이사이, 나는 나를 정성껏 챙기고 있었다. 어느새 등에 닿을 만큼 길어진 머리카락을 보며 헤어숍을 예약했다. 층을 많이 낸 허쉬컷을 할지, 단정한 볼륨매직을 할지, 사이드뱅으로 얼굴선을 부드럽게 감싸볼지 고민하는 시간이 낯설고도 달콤했다. 거울 속의 나를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여유, 그것은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였다.


오랫동안 방치했던 발톱 관리도 다시 시작했다. 디스크 통증 때문에 몸을 구부리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던 시절, 내 발끝은 돌보지 못한 폐허와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정리가 되고 있다. 혼자 앉아서 양말을 신을 수 있게 된 사소한 진보가 내게는 기적과도 같다. 부러지기 일쑤였던 손톱에는 강화제를 꼼꼼히 발라준다. 투명한 액체가 손톱 위에 얹어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내가 나를 덜 거칠게 다루고 있음을, 나를 귀하게 여기고 있음을 온몸으로 감각한다.


생활의 질서도 다시 잡혀가고 있다. 집을 한꺼번에 치워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하루에 딱 하나씩만 실천한다. 청소기를 가볍게 돌리고, 창문을 열어 묵은 공기를 내보내고, 고양이 벨라가 매일같이 거실에 흩뿌려놓는 모래를 묵묵히 치운다. 발바닥에 자박자박 밟히던 모래를 외면하지 않고 바로 치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아침마다 영양제와 진통제, 그리고 마음의 파도를 잠재울 약을 차례로 챙겨 먹는 행위는 이제 번거로운 굴레가 아니라 나를 위한 경건한 의식이 되었다.


이런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되자 알게 되었다. 내가 '혼자라서' 괜찮은 게 아니었다. 나를 더 이상 함부로 내버려 두지 않기로 했기에, 비로소 괜찮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않는다. 그 시간을 오롯이 '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돌보는 행위들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리듬으로. 혼자여서 외로운 순간이 아니라, 혼자여서 내 안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는 순간들. 그 소중한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방구석 여행자로서의 진정한 기쁨을 맛보고 있다.


**오늘의 음악**

여행가 - 권진아

https://youtu.be/5aET7_mh3bI?si=naI8QVF1VAG2n0OX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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