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잊었던 나의 결

<you already have, 권진아|노래>

by 푸린


완벽하게 잘하는 하루는 아니어도, 적어도 내가 나를 무너뜨리지는 않는 하루. 요즘의 나는 그런 하루들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날이 편안한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자주 불안해진다. 상반기 채용 시즌이 다가오면 주변의 속도에 맞춰 내 심박수도 덩달아 빨라진다. 동료와 함께 스터디 카페에 앉아 있었던 날이었다. 옆자리 동료가 치열하게 NCS 문제를 풀며 미래를 대비할 때, 나는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있었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문장 사이에 내 생각을 적어 넣으며 그 활자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불쑥불쑥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나 지금 저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거 아닐까? 이 시간에 책이나 읽고 있어도 되는 걸까?’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나는 책을 덮지 않았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정답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내 내면을 채우는 문장들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해하는 나를 밀어내지 않고, 그 옆에 앉혀둔 채 묵묵히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비슷한 날이 또 있었다. 위염과 장염이 한꺼번에 찾아와 일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끙끙 앓고 있던 날이었다. 혼자서 아픈 시간을 버티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즉흥적인 연락이 왔다. 잠깐 나올 수 있냐는 말에 한참을 망설였다. 뭘 먹으면 바로 토할 것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텀블러에 보리차를 가득 채워 들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미리 말을 해두고 집을 나섰다. 완전히 괜찮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날의 나는 집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한 공간에서 노래를 불렀고, 버스킹에서 부를 곡을 함께 정했다. 시끄럽게 웃지도 않았고, 크게 떠들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픈 몸은 그대로였지만, 그날의 나는 분명히 조금 살아 있었다.






요즘의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이어가고 있다. 스레드에는 조현병인 줄 알았던 지난 4년의 이야기를 하나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글이 조회수 2,000회를 넘겼다. 숫자 자체보다도, 그 시간을 다시 꺼내어 말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다.


네이버 블로그에 예전에 써두었던 영감글들도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100개가 넘는 글들이었다. 그 글들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위기의 순간마다 어떤 방식으로 나를 붙잡아 왔는지가 보였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세상 쪽으로 조금씩 몸을 기울이던 시간들이었다.


놀랍게도 지금의 회복 과정과 그때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같은 식으로 나를 살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나만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나의 결이었다.


내려놓고 나니 신기하게도 마음의 엉킨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떤 선택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지금 제대로 된 길로 걷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불안하다고 해서 무작정 방향을 틀거나 나를 비난하며 채찍질하지 않는다. 그 순간의 불안한 나를 밀어내지 않고, 그저 나란히 옆에 앉아 “그래, 지금은 불안할 수 있지”라고 말해주며 함께 머문다.



* 오늘의 음악
You Already Have - 권진아

https://youtu.be/gfDHB8ZY5R8?si=zAxO4RHKYDSH1AeI


내가 선정한 나의 버스킹 곡. 다시 도전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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