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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무서움

넥타이 매고 가운 입고 자기

by 김진오
성형외과 의국 모임.jpg


얼마 전, 우연히 레지던트 시절 지도 교수들을 만나는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나눈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이야기가 오갔고, 함께 웃으며 추억 속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그러던 중 레지던트 시절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다. 레지던트 1년 차였던 시기는 모든 것이 낯설고 일의 강도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였다. 하루 2~3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의국 소파에서 가운을 걸친 채 넥타이를 맨 채로 곯아떨어지던 날들이 일상이었다.


시간이 흘러 2년 차가 되면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집에 돌아가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편안히 잠드는 시간이 주어지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익숙하지 않은 편안함이 오히려 잠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다시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채 가운을 걸치고 소파에 누워야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단다. 긴장 속에서 몸이 밴 습관이 편안함조차 거부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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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그 시절의 모습을 떠올렸다. 낯선 병원의 분위기, 쏟아지는 업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어버린 이상한 루틴들. 낡고 푹 꺼진 소파에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치며 짧은 휴식을 취했던 시간들이 이젠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의료계만의 독점 콘텐츠는 아닌 것 같다.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야근과 새벽 업무에 익숙해진 나머지, 주말에 집에서 쉬는 것이 어색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심지어 "집에서 침대에 누우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잠을 설친다. 결국 회사에서 책상 위에 엎드려 자던 습관이 더 편하다"는 고백까지 나온다. 이쯤 되면 습관이 아니라 예술 수준의 적응력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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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이토록 무서운 것인가 보다. 그래서 좋은 루틴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일 거다. 넥타이 매고 자는 게 편할 정도로 습관이 무서운 것일진대 습관이 되면 그 어떤 것이 불편할쏘냐. 좋은 루틴을 만드는 것을 평생 목표로 살고 있는데 또 한 번 습관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에피소드였다면 억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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