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매고 가운 입고 자기
얼마 전, 우연히 레지던트 시절 지도 교수들을 만나는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나눈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이야기가 오갔고, 함께 웃으며 추억 속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그러던 중 레지던트 시절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다. 레지던트 1년 차였던 시기는 모든 것이 낯설고 일의 강도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였다. 하루 2~3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의국 소파에서 가운을 걸친 채 넥타이를 맨 채로 곯아떨어지던 날들이 일상이었다.
시간이 흘러 2년 차가 되면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집에 돌아가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편안히 잠드는 시간이 주어지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익숙하지 않은 편안함이 오히려 잠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다시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채 가운을 걸치고 소파에 누워야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단다. 긴장 속에서 몸이 밴 습관이 편안함조차 거부하는 것인가 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그 시절의 모습을 떠올렸다. 낯선 병원의 분위기, 쏟아지는 업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어버린 이상한 루틴들. 낡고 푹 꺼진 소파에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치며 짧은 휴식을 취했던 시간들이 이젠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의료계만의 독점 콘텐츠는 아닌 것 같다.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야근과 새벽 업무에 익숙해진 나머지, 주말에 집에서 쉬는 것이 어색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심지어 "집에서 침대에 누우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잠을 설친다. 결국 회사에서 책상 위에 엎드려 자던 습관이 더 편하다"는 고백까지 나온다. 이쯤 되면 습관이 아니라 예술 수준의 적응력이라고 할 만하다.
습관이 이토록 무서운 것인가 보다. 그래서 좋은 루틴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일 거다. 넥타이 매고 자는 게 편할 정도로 습관이 무서운 것일진대 습관이 되면 그 어떤 것이 불편할쏘냐. 좋은 루틴을 만드는 것을 평생 목표로 살고 있는데 또 한 번 습관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에피소드였다면 억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