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작은 기적들
지금의 ‘나’는 우연이 거듭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로 정의된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도 우연히 된 것들의 집합체다. 어떻게 내가 의사가 되었는지, 성형외과를 전공하게 되었는지, 모발이식을 전문으로 하게 되었는지를 되짚어보면, 모든 것이 우연의 연속이었다.
진로를 정해야 했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TV 드라마 ‘종합병원’을 보고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솔직히 조금 유치한 이유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만약 ‘카이스트’라는 드라마가 그 시기에 방영되었다면 공대 진학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종합병원’이 방송된 그 시점은 나에게 단순한 우연이었다.
성형외과 전공의 시절, 교수님들은 특정 수술 주제를 정해 레지던트를 지명하여 발표를 하게 했다. 대부분 전공의가 1년에 한 번 정도 발표를 맡았는데, 나는 총 세 번의 발표 중 두 번이나 ‘모발이식’을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었다. 모발이식은 대학병원에서 흔히 다루는 수술이 아니었고, 같은 사람이 동일한 주제로 여러 번 발표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두 번의 발표가 내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우연이 될 줄은.
교육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가 되어 선배님 병원에 취직한 후, 눈과 코 성형술에 집중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님께서 병원에 모발이식센터를 세워보자며 나에게 책임을 맡아보라고 하셨다. 정말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선배님의 명령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
새로운 병원으로 스카우트된 이후에는 탈모 환자가 급증하면서 모발이식 수술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역시 오너의 부탁이니 마다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병원의 경영 위기가 찾아오면서 함께하기 어려워졌고, 그 기회에 개원을 결심하게 되었다.
개원을 준비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해온 일이 ‘모발이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의도치 않게도, 모든 경험이 모발이식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때 사람들과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모발이식 의사로 만들려고 한 것 같다”며 웃곤 했다. 아내도 하늘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며 나를 응원해주었다.
이렇게 온 우주의 기운을 받아 ‘우연히’ 만들어진 모발이식하는 성형외과 의사, 그것이 바로 나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사건들을 의미 있게 만들고 기회로 바꾸는 것은 결국 준비된 사람의 몫이다. 준비된 사람, 열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는 나이가 들어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우연’들을 ‘필연’으로 바꿀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