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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는 머리카락과 함께 살아왔다

아무튼, 머리카락

by 김진오

머리카락, 우리의 운명


머리카락이란 참 이상하다. 뭔가 중요한 것 같으면서도, 때론 별거 아닌 듯한 존재다. 40여 년간 내 머리 위에 붙어 있었으면서 하루에도 몇 가닥씩 나를 떠난다. 그리고 나는 매일 그것들을 쓸어내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 친구들, 오늘도 수고 많았어.’

나는 머리카락과 함께 살아왔다. 아니, 머리카락이 나와 함께 살아왔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 사이는 평생을 함께할 운명은 아니었다. 언젠가 머리카락은 나를 떠날 것이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거울을 보면 알 수 있다. 머리카락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수수 빠지고, 컨디션이 좋으면 윤기가 흐른다. 얼굴은 화장이나 스킨케어로 꾸밀 수 있어도, 머리카락은 그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머리카락의 변화에 예민하다. ‘얼굴이 왜 이렇게 팍삭 늙었어?’라는 말보다 ‘머리숱이 줄어든 것 같아’라는 말이 훨씬 더 무섭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머리카락 우리의 운명 (1).png


나는 탈모를 치료하는 의사다. 매일같이 머리카락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표정 속에는 불안과 진지함이 묘하게 섞여 있다. ‘의사 선생님, 이거 다시 나나요?’라는 질문에는 단순한 의학적 궁금증만이 아니라, ‘나는 괜찮을까요?’라는 감정이 숨어 있다. 그럴 때 나는 머리카락이 아니라 그 사람의 눈빛과 표정을 본다. 그리고 조용히, 진심을 담아 말한다. ‘괜찮아요.’


머리카락은 단순한 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를 담고 있으며, 때론 자존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는 머리카락이 주는 의미를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욕실 바닥에 빠진 머리카락을 보며 문득 깨닫는다. ‘아, 이게 그냥 지나가는 일이 아니구나.’

이 책은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진지한 이야기도 있고, 조금은 허무한 이야기, 때론 웃음을 유발하는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머리카락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다룬 실용서가 아니다. 오히려, ‘머리카락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책이다.

그러니,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도 어느 순간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번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자, 오늘도 잘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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