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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머리카락이 내 인생을 보여준다

아무튼, 머리카락

by 김진오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마시고 샤워하기 전, 화장실 앞 거울을 바라본다. 아주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무심한 듯 하루의 첫 순간을 맞이하며, 거울 속의 나는 언제나 조용하고,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다. 더는 무심할 수 없게 되었다. 거울 속 나의 눈보다, 코보다, 입보다도 먼저 시선이 향하는 곳. 머리카락이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내 머리카락을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빗질을 하고, 적당히 정리한 후 외출하곤 했는데, 이제는 습관적으로 줄어든 머리숱을 확인하고,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흰머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나도 모르게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온다. 여전히 무심한 척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염색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흰머리를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세월의 흔적을 실감한다.

나는 머리카락을 통해 내 인생을 본다. 십 대 시절, 젖은 머리를 말릴 새도 없이 뛰어나가던 날들이 있었다. 한 올 한 올에 생기가 가득했던 시절. 머리카락은 쉽게 헝클어졌지만, 금방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내 삶도 그랬다. 어떤 실수나 방황도 결국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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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서른 대를 지나 마흔을 넘기며, 머리카락은 조용히 변해갔다. 이제는 말릴 때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개수를 세어보게 된다. 어쩌다 거울 속에서 몇 가닥의 흰머리를 발견하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가끔은 무심코 찍힌 사진이나 영상을 보다가 정수리 부근이 휑하게 비어 보이는 모습을 발견하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남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거울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종종 머리카락을 운명에 비유하곤 한다. 자라나지만 빠지고, 빠지지만 다시 자라는 것. 그 순환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시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한 번 잃으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그렇고, 시간도 그렇다. 젊음도 그렇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을 떠올리며, 나는 내 삶의 변화를 실감한다.

어쩌면 머리카락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 삶의 흔적이며,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증명하는 작은 조각이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는 우리가 겪었던 감정들이 서려 있다. 설레었던 순간, 후회했던 순간, 견뎌낸 순간들이 한 가닥의 선 위에 실처럼 이어져 있다. 검고 풍성했던 머리카락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한 흰머리를 볼 때쯤, 나는 깨닫는다. 거울 속의 머리카락은 나의 삶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거울이라는 것을.

오늘도 거울 앞에 선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본다. 달라진 모습 속에서 달라지지 않은 무언가를 찾으며, 나는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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