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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여정

아무튼, 탈모

by 김진오

머리카락은 신기한 존재다. 있을 때는 무심하지만, 사라지면 그 존재감이 나타난다. 슬픔, 당황, 분노, 심지어 철학적 고민까지.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이 머리숱이 줄어든 후에야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머리카락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길을 걷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처음부터 이쪽 계통 의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나는 외과의사가 되어 생명을 살리는 대형 수술을 집도하는 삶을 꿈꿨다. 마치 드라마 '하얀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처럼.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다르게 흘렀고, 어느새 나는 머리카락이라는 작은 존재에 매료되었다. 주변에서는 "왜 성형외과 의사가 하필이면 모발이식이냐"라고 묻기도 했지만, 나는 머리카락이 가진 힘을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신하게 된 몇 가지 순간이 있었다.


의대 실습 중 한 젊은 남성이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았다. 진료실에 들어선 그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선생님, 제 머리카락이 점점 얇아지는 것 같아요. 그냥 기분 탓일까요?"

자세히 살펴보니 탈모 초기였다. 그러자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이제 친구들이 이마가 넓어졌다고 놀리는데, 괜히 신경이 쓰여요."라고 했다. 그의 표정에서 깊은 고민이 엿보였다.

그 순간, 탈모가 단순한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과도 연결된 문제임을 깨달았다.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환자의 감정까지 보듬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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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시절, 탈모로 고민하는 환자들을 자주 만났다.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었다.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던 한 환자가 거울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머리카락이 빠지니까 나 자신도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카락이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니라 환자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외과적 수술만큼이나 환자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였다.


어느 날, 한 남성이 진료실을 찾았다. 그는 가발을 쓸지, 이식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회사 회식 자리에서 가발이 벗겨지는 사고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회식 때 장난삼아 친구가 제 머리를 툭 쳤는데, 가발이 테이블 위로 날아갔어요. 모두 순간 얼어붙었고, 저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진땀이 났습니다."

그는 가발을 계속 써야 할지, 자연스럽게 이식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나는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머리카락은 단순한 외모 요소가 아니라 인간관계와도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결국 그는 신중한 상담 끝에 모발이식을 결정했다. 몇 개월 후,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나는 또 한 번 머리카락의 힘을 실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보듬고, 때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카락을 심으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첫 데이트를 앞둔 청년, 중요한 발표를 앞둔 직장인, 결혼을 앞둔 신랑. 머리카락은 그들의 자신감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조금씩 변해갔다.


돌이켜보면, 탈모 및 모발이식 하는 성형외과 의사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순간부터 다시 자라는 순간까지, 환자와 함께하는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머리카락을 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자라날 때마다, 나도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머리카락을 심는다. 그리고 언젠가, 심은 머리카락과 함께 환자들의 삶도 무성하게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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