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머리카락
아니, 더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머리카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TV를 켜면, 연예인들은 풍성한 머리숱을 자랑하며 등장한다. 광고 속 모델들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천천히 빗어 넘긴다. 남자 주인공은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며 고민하는 연기를 하고, 여자 주인공은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칼을 한쪽으로 넘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사람들에게 머리카락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우리가 처음부터 대머리로 태어났다면? ‘머리 스타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면?
미용실이 필요 없고, 머리 손질에 시간을 쓸 필요도 없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외출해도 괜찮다. 샴푸 광고도 없을 것이고, ‘탈모’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르마를 어디로 탈까’ 같은 고민도 없고, ‘나는 긴 머리가 어울릴까, 짧은 머리가 어울릴까’ 같은 질문도 필요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우리가 머리카락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머리카락이 자유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를 꽁꽁 묶어놓는다는 점이다.
내가 처음으로 ‘머리카락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깨달았던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반에 유독 짧은 머리를 한 친구가 있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장난이 많던 녀석이었는데, 별명은 ‘빡빡이’였다. 그때는 그것이 왜 웃긴지, 왜 놀림의 대상이 되는지 몰랐다. 그냥 친구들 모두가 그렇게 부르니까 나도 불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애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거, 내가 하고 싶어서 깎은 게 아니야! 우리 아빠가 깎으라고 했다고!”
그 순간 알았다. 머리카락이란 단순한 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가 짧은 머리를 하면 ‘군인 같다’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긴 머리를 하면 ‘여성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염색을 하면 ‘튀는 사람’이 되고, 흰머리가 생기면 ‘나이 들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머리카락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에 나가면 ‘깔끔한 스타일’이 중요하다 하고, 중년이 되면 ‘젊어 보이려면 염색을 해야 한다’고 한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내 인생에 던지는 영향이 생각보다 컸다.
영화를 보면 외계인들은 대부분 머리카락이 없다. 반질반질한 두개골을 자랑하는 그들은 인간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머리카락이라는 것이 애초에 불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이쯤에서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머리카락이 없는 존재를 더 진화한 존재로 상상하는 걸까? 아니면 머리카락이 없는 것이 단순히 효율적인 선택일 뿐일까? 외계인들이 대개 반질반질한 머리를 하고 등장하는 이유는 어쩌면 머리카락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만약 인간도 그런 방식으로 진화했다면, 우리는 머리카락이 없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혹은 반대로, 인공적으로 머리카락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발전시켜 지금보다 더욱 화려한 스타일을 추구했을까?
탈모는 우성 유전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인류의 머리카락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탈모는 자연선택의 결과일까? 혹시 탈모인들이 더 진화된 인간일까? 그래서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한 외계인들은 모두 탈모인 걸까? 어쩌면 그들은 이미 머리카락을 유지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진보된 생명체일수록 외적인 요소보다 내적인 요소에 집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판단하고 평가했을 것이다. 머리카락이 없는 대신 이마의 형태를 보고 사람을 구분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두피의 색깔이나 윤기를 따졌을 수도 있다. 머리카락이 없어도 우리는 결국 다른 기준을 만들어서 누군가를 평가했을 것이다.
결국 머리카락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에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도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신경 쓴다. 그리고 누군가는 미용실에서 ‘이번에는 어떤 스타일로 변화를 줄까’ 고민할 것이다.
그게 인간이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에 신경을 쓰고, 없으면 없는 대로 걱정하고, 있으면 있는 대로 고민하는 존재.
털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신경을 쓸까?
아마도, 그게 우리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