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머리카락
어릴 때부터 머리카락이 사람들의 인상을 좌우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어른들은 긴 머리는 여성스러움의 상징, 짧은 머리는 활발한 성격을 의미한다고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머리 스타일이 너랑 안 어울려" 같은 말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머리카락 하나로 사람이 평가받는 문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면접을 준비하던 친구는 머리를 정리하러 미용실에 갔다가 황당한 말을 들었다. "너무 짧으면 강해 보이고, 너무 길면 관리 안 하는 사람 같아 보일 수 있어요. 적당히 정리해서 신뢰감을 주는 게 좋아요." 결국 그는 무난한 길이로 잘랐지만, 미용사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했다. 면접의 합격 여부가 머리카락 길이에 달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회식 자리에서 선배가 내게 물었다. "너는 언제 머리카락을 짧게 자를 거야? 짧으면 더 프로페셔널해 보인다잖아." 나는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씁쓸했다. 업무 능력과 성과가 중요한 곳에서조차 머리 스타일이 평가 기준이 될 줄이야.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한 고객은 내게 와서 "머리카락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어요"라고 했다. 직장 동료들이 예전에는 그를 젊고 활기찬 사람으로 봤는데, 탈모가 시작된 후에는 '조금 지쳐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사람의 피로도를 나타내는 척도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는 결국 모발이식을 결정했다.
우리 사회는 머리카락을 사람의 정체성과 연결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긴 머리는 여성스러움, 짧은 머리는 강인함, 탈모는 노화, 염색은 반항심. 머리카락은 결국 몸에서 자라나는 단백질 덩어리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하고, 심지어 차별까지 한다.
나는 이제 사람들이 머리카락이 아닌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먼저 보았으면 좋겠다. 머리카락이 많든 적든, 길든 짧든, 염색했든 안 했든,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언젠가 지하철에서 반짝이는 머리를 보아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