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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vs. 짧은 머리: 성별과 머리카락의 관계

아무튼, 머리카락

by 김진오

나는 머리카락이 늘 궁금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중학교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 그 시절 남자들은 미용실이 아닌 이발소를 가는 것이 당연했다. 미용실에 가면 괜히 이상한 눈초리를 받았으니까. 바버체어에 앉아 망토를 두르고, 낡은 전기 이발기의 윙윙 소리를 들으며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걸 보며 늘 한 가지 생각을 했다.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다면 이 모든 과정이 필요 없을 텐데.” 하지만 머리는 자랐고, 나는 머리를 잘랐다. 그런 반복 속에서 문득 드는 궁금증이 있었다. 긴 머리는 누구의 것이며, 짧은 머리는 또 누구의 것인가?


긴 머리와 짧은 머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성별과 얽혀 있다. 나는 대학 시절 짧은 머리를 고집하는 여성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길러 나타났다. 모두가 놀랐다. 가장 먼저 나온 반응은 “무슨 일 있어?”였다. 그녀는 그냥 변화를 주고 싶었다고 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갑자기 왜 기르기로 한 거야?"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성별과 머리카락의 관계가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여자는 긴 머리, 남자는 짧은 머리.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이는 역사와 문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해온 규범이다. 조선 시대만 해도 남성들은 긴 머리를 땋아 다녔고, 서양에서도 18세기까지만 해도 가발을 쓰거나 길게 기른 남성들이 많았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단정함’이라는 개념이 남성의 짧은 머리를 당연시하게 만들었고, 여성의 긴 머리는 ‘여성스러움’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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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모발 이식을 받으러 온 환자와 머리카락 길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긴 머리를 고집했던 사람이었다. “긴 머리가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는 짧은 머리를 강요받았고, 결국 단정한 짧은 머리로 바꿨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탈모가 오고 나서는, 다시 머리를 기르고 싶어 졌단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머리 스타일을 고를 수 있는 시기는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 진료실을 찾는 여성 환자들 중에는 단발을 하면 후회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긴 머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다가 충동적으로 자르고 나면 다시 기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어떤 환자는 나에게 “긴 머리는 신중한 결정처럼 여겨지지만, 짧은 머리는 순간의 충동 같아요.”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짧은 머리는 쉽게 자를 수 있지만, 다시 기르기는 어렵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는 행위 자체가 어떤 선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 변할 거야.” 혹은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래.”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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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은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고, 습관이고, 정체성이다. 한 번은 해외 학회에서 긴 머리를 한 남성 의사를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에게 긴 머리는 그저 스타일이 아니라 신념이었다. 그는 짧은 머리가 아닌, 긴 머리를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지만, 그 머리카락이 오히려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

머리카락이 길든 짧든,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한 미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자유의 표현이 되고, 때로는 규범의 강요가 되며, 때로는 내면의 변화가 된다. 그러니 머리카락을 자를 때 혹은 기를 때, 그 행위가 단순한 스타일 변화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머리카락을 통해 우리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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