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탈모
그는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40대 초반의 직장인이었고, 짧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뭔가 확신하지 못하는 듯한 불안이 엿보였다.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마가 넓어진 것 같아요."
나는 그의 얼굴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실제로 그의 이마는 약간 올라간 듯 보였지만, M자 탈모처럼 극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나이를 먹으며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느꼈나요?"
그는 손을 들어 이마선을 짚으며 답했다.
"한 1년 전부터요. 원래도 이마가 넓은 편이긴 했는데, 요즘은 머리를 감고 나면 더욱 넓어 보이고, 예전보다 머리카락이 뒤로 후퇴한 것 같아요. 직장 동료들도 '너 예전보다 이마 넓어지지 않았냐?' 하고 장난처럼 말하는데…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찝찝하더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확대경을 들어 그의 이마선을 면밀히 살펴봤다.
"아, 이건 **헤어라인 성숙화(hairline maturation)**네요."
그는 생소한 단어에 눈을 깜빡였다.
"헤어라인 성숙화요?"
"네. 보통 20대 초반까지는 이마 쪽에 가늘고 옅은 잔털이 많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 잔털이 점점 사라지면서 이마가 약간 넓어지는 변화를 겪게 돼요. 이건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탈모와는 다릅니다."
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면, 이게 병적인 탈모가 아니라는 건가요?"
"네. 탈모는 보통 모발이 가늘어지고 밀도가 낮아지면서 점점 빠지는 게 특징이지만, 헤어라인 성숙화는 정상적인 노화 과정이에요. 예전보다 이마가 넓어졌다고 해서 전부 탈모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겪는 변화예요."
그는 한숨을 내쉬며 거울을 다시 들여다봤다.
"그렇다면 치료할 필요는 없나요?"
"이건 병적인 탈모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치료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M자 탈모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해 볼 수 있어요."
나는 그의 두피를 자세히 살펴보고 모낭 밀도를 측정했다. 다행히도, 그는 유전성 탈모 초기 징후는 없는 상태였다.
"혹시 가족 중에 탈모가 있는 분이 있나요?"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네, 아버지가 50대부터 머리숱이 확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언젠가 그렇게 될까 봐 걱정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두피 건강을 꾸준히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현재 상태에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스트레스 관리와 생활 습관 개선을 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어요. 그리고 만약 탈모가 진행된다면, 초기에 개입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내 설명을 들으며 한층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이마가 넓어지는 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일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선생님 말씀 들으니, 무조건 탈모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네요."
진료를 마친 후, 그는 병원 문을 열고 나갔다. 처음 들어올 때보다 훨씬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마가 넓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는 단순한 외적인 변화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나이 들어가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적인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우리가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과정은 불안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장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