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머리카락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큰 거울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면도를 하시면서 그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 계셨다. 그리고는 빗을 들어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정리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머리 손질이 어른이 되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거울 앞에서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30대부터 탈모약을 먹어왔다. 48세가 된 지금, 정수리 머리숱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다만, 사람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나는 여전히 꽤 괜찮은 머리숱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발을 치료하는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탈모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나 스스로도 그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머리카락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젊음과 매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환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머리카락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태도까지 변화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평소에는 활발하고 유머 감각이 넘쳤던 사람이,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면서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자신감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어떤 환자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머리카락이 빠질수록 말수가 줄어든다니까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사람들이 제 머리 보고 하는 말을 듣기 싫어져서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지만, 그 속에 담긴 씁쓸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는 머리카락이 풍성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미묘하게 다르게 대한다. 굳이 차별하려는 의도가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머리카락이 많은 사람이 더 건강하고 활기차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탈모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점점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이런 환자들을 많이 만나 왔다. 한 번은 30대 초반의 남성이 상담을 왔다. 매우 말쑥한 옷차림에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유능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머리숱이 줄어든 것이 너무 신경 쓰인다며, 외출할 때마다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했다.
“회사에서 회의할 때도 저도 모르게 자꾸 손으로 머리를 만지게 돼요.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는데, 저는 그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는 실제로 외모가 크게 변한 것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변화를 극도로 의식하면서 자존감이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치료 옵션을 이야기하며 해결책을 찾아갔다. 상담이 끝나갈 무렵 그는 문득 이런 말을 했다. “근데, 선생님은 머리숱이 많으시네요. 부럽습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저도 신경 많이 씁니다. 30대 때부터 탈모약을 먹었어요. 정수리 쪽이 점점 변하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머리카락은 단순한 신체 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자존감, 사회적 이미지, 그리고 정체성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머리숱이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한 외모 변화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바꿔놓는다.
중요한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이다. 머리카락이 우리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리를 정의하는 것이 아닐까? 탈모 치료를 연구하는 의사인 나도 머리카락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그것이 나를 규정짓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탈모든 아니든, 우리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