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머리카락
최근에 지인들에게서 같은 유튜브 링크를 여러 번 받았다. "꼭 보라"는 말과 함께. 심지어 평소에 별 말을 안 섞던 후배마저 "형, 이건 꼭 봐야 합니다"라며 보냈다.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영상을 틀었다.
'너덜트'라는 스케치 코미디 채널이었는데, 전에도 몇 번 우연히 알고리즘 때문에 본 기억이 있었다.
영상의 시작은 평범했다. 두통을 참는 친구, 술 마시다가 이가 빠진 친구, 팔이 휘었는데도 병원을 안 가는 친구들. "안 죽어!"라는 외침과 함께 모든 심각한 증상들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나도 모르게 끄덕였다. 우리 주변에도 있지 않은가. 조금 아프면 약 안 먹고 버티는 사람들, 웬만하면 병원 안 가겠다는 사람들. 여태까지는 크게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탈모가 등장하는 순간...
“프로페시*가 있을까요? 위급한 상황입니다.”
탈모 이야기가 등장하자, 등장 인물들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그제야 주인공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두통, 황달, 팔 부러짐 따위는 버틸 수 있어도 탈모는 응급 상황이었다. 심지어 병원을 가야 하는 이유가 머리카락 때문이라니. 나는 웃다가도 잠시 멈칫했다.
이게, 웃긴가?
웃기다.
아니, 너무 웃겼다. 그리고 너무 현실적이었다.
병원에 가야 할 이유가 "머리가 빠진다"는 것이라니. 사실 그 어떤 질병보다도 남자들에게 있어 탈모는 가장 현실적인 공포가 아닐까?
탈모, 모발이식을 전문으로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심각한가요?"였다. 탈모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개 신체적으로는 멀쩡했다. 가슴 통증도 없고, 머리 아픈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병원을 찾아왔다. 팔이 휘어져도 병원에 안 가는 사람들이, 탈모가 의심되면 병원에 온다. 이쯤 되면 모발이 단순한 머리카락이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탈모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참 흥미롭다. 누구나 "안 죽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거울 앞에서 점점 밀려가는 헤어라인을 보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냥 밀어버리면 되잖아?"라는 말은 탈모가 진행되지 않은 사람만 쉽게 할 수 있는 조언이다. 진짜로 헤어라인이 후퇴하면, 머리를 밀어야 할지, 약을 먹어야 할지, 이식을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된다. 이 고민은 황달이나 감기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 영상을 보며 다시 한번 확신했다.
탈모는 병이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정체성의 위기로 다가오는 병. 그러니 탈모를 단순한 미용 문제로 치부하지 말자. 우리는 머리카락이 빠지면 병원을 가야 한다. 안 죽어도, 병원을 가야 한다.
내일부터 진료할 때 이렇게 외쳐볼까.
“프로페시* 처방하겠습니다. 위급한 상황입니다.”
영상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rb76sXMw4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