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발소에서 마주한 내 미래

아무튼, 머리카락

by 김진오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익숙한 가위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쓱쓱 가위를 움직이는 소리, 바리깡이 머리를 밀어내는 진동, 이발사의 낮은 목소리. 이 모든 소음이 편안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게 하는 신호 같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니 머리카락이 제법 자라 있었다.

"이번엔 어떻게 해드릴까요?"

이발사의 물음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짧게 자를까, 아니면 조금 남길까. 그런데 문득 미래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점점 얇아지는 머리카락, 넓어지는 이마, 선명해지는 가르마. 탈모 의사로서 많은 환자를 만나왔지만, 정작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은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결국 익숙한 길을 택했다.

"그냥 지금 스타일대로 다듬어 주세요."

그러자 다시 가위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울려 퍼졌다. 낯선 변화를 시도하기보다 지금 내 모습에 맞춰 사는 것이 조금은 편안했다.


이발소에서 마주한 내 미래 (3).png


눈을 감으니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이발소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 가위 소리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바닥에 수북이 쌓이는 머리카락을 보며 '이렇게 많이 잘려 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소리가 시간의 흐름처럼 들렸다. 이발소에 올 때마다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을 확인하게 되는 기분이다.

가끔은 이발소에서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이것이 단순히 머리카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내 역할,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나날들이 함께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 짧게 잘린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한 시절이 끝나고 또 다른 시간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한 번은 바빠서 이발소에 갈 시간이 없어 머리가 꽤 길어진 적이 있었다. 거울을 보며 ‘이렇게 긴 머리도 괜찮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신경 쓰였다. "의사 선생님, 스타일 변신하셨네요?" 한마디에 다시 짧은 머리로 돌아갔다.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과 내가 원하는 모습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또 다른 날, 변화를 주고 싶어 이발사에게 "이번엔 좀 색다르게 해 볼까요?"라고 말했다. 이발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럼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해드릴게요."라고 했다.

결과는... 별로였다. 거울 속 낯선 내 모습에 당황했고, 며칠 후 다시 원래 스타일로 돌아갔다. 변화가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익숙한 것이 더 편했을까?

어쩌면 머리를 자르는 일은 내 삶의 작은 은유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지만, 때로는 주변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이 나를 결정짓는다. 늘 똑같은 스타일로 돌아가면서도, 나는 나름대로 변화 속에서 균형을 찾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발소에서 마주한 내 미래 (1).png


이발소에서의 작은 선택들이 삶의 방향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게 자를지, 길게 남길지,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할지. 그 순간마다 나는 내 미래를 마주하고 있었다. 가위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해지는 건 어쩌면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감정일지도 모른다. 머리숱이 적어지니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그 불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결국 나니까.

이발소를 나서며 다시 거울을 봤다. 변화는 두렵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가위 소리는 계속되겠지만, 이제는 그 소리에 휘둘리지 말자. 나는 머리카락을 다듬을 때마다 변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지만, 그것이 불안보다는 기대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기로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머리와 머리카락,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