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을 통해 본 의사의 기본권
"오빠, 가봐야 하는 거 아냐?"
비행기에서 의사를 찾는 콜이 울렸다. 가슴이 답답한 승객이 있는데 의사가 있으면 와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방송을 듣고 아내가 나한테 이렇게 말한 거다.
어... 나는 성형외과전문의인데... 가봐야 하는 걸까?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면 뭘 해줘야 했었지? 인턴 시절 응급실에서 환자를 봤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망설이다가 스튜어디스를 불렀다.
"저는 성형외과전문의인데... 혹시 저라도 괜찮으면 같이 가볼까요?"
가슴이 답답한 승객한테 가서 간단한 응급 처치를 하고 있는데 마침 내과 전문의 선생님이 오셔서 그분께 넘기고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나중에 이 일을 동료 의사들에게 얘기했더니 다들 한 소리 씩 했다.
"그 환자가 혹시 잘못되기라도 했었다면 너 처벌받아."
"그럴 땐 그냥 모른 척 가만히 있어. 나서다가 큰일 난다."
"비행기 타면 그냥 와인 먹고 자버려야 해."
선한 사마리아 법이라는 것이 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면서 생길 수 있는 법적 문제에서 구조자를 보호하는 법이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근본적인 도덕적 동의 아래 시행되는 법이다. 도와주고 처벌받는 것을 두려워해 선행을 자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데, 한국에는 이 법이 없다. 그래서 응급구조 시 CPR을 해서 생명을 구해도, 심장 압박 마사지를 하다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소송을 당했다는 일을 흔하게 듣는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란다는 속담이 딱 맞는 상황이다.
이 일이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최근 벌어진 계엄령 이슈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인들에게 48시간 내 복귀를 명령했다.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에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전공의들은 파업을 한 것이 아니라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난 상황이었다. 그들은 군 입대, 다른 병원 취직, 개업, 또는 해외로의 이주 등 다양한 선택을 하였다. 그런데 어디로 복귀하라는 것인지...
의사는 생명과 직접 관련된 직업이기에, 다른 직업과는 달리 책임과 자유가 충돌할 때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시해야 하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의료인의 단체행동권과 기본권 보장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따른 의료 대란 속에서 의사들의 기본권이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을 다룬 연구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법 제59조에 포함된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 조항이 의료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유신정권 시기부터 도입되어 이후 민주정권에서도 개정되며 억압적인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의사는 생명과 직접 관련된 직업이기에, 다른 직업과는 달리 책임과 자유가 충돌할 때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시해야 하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공익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보고서에서는 기존의 감염병 예방법이나 응급의료법 등 이미 존재하는 법률로도 공익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의사들에게 불필요한 억압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안전망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다. 필수 의료 서비스 제공이 방해받지 않도록 최소 인력을 확보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합의된 지침으로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면서도 의료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현실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영국에서는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 의사들이 파업할 경우, 응급 서비스는 반드시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는 보호하되, 의료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배려한 방식이다. 독일은 법적으로 의사들의 파업권을 인정하면서도, 생명과 관련된 필수 업무는 예외로 둔다. 이러한 모델들은 공익과 기본권의 균형을 찾기 위한 유용한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의사들은 직업적 소명감 때문에 기본권 침해 상황에서도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의료진은 자신의 건강이나 가족을 돌보는 시간까지도 환자 치료를 위해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사명감이 법과 제도에 의해 강요된다면 그것은 윤리적 딜레마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의 의료윤리학자 에드먼드 펠레그리노(Edmund Pellegrino)는 의사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사의 책임은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과 동료의 권리를 침해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의사의 사명감이 보호받으려면, 국가와 사회가 그들의 헌신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의료인의 기본권 논란은 단지 법적, 제도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사회적 신뢰와도 직결된 문제다. 의사는 환자와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무리한 요구와 규제는 이 신뢰를 훼손시킬 수 있다. 의료인들은 본인의 건강과 가족을 희생하면서도 환자를 돌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헌신이 당연시되거나 억압으로 이어진다면, 환자와 의사 간 신뢰 관계에 금이 갈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기 위해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반대로 의사는 환자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 양측이 협력하는 방식이 필요하며, 이는 사회 전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공익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보고서에서는 기존의 감염병 예방법이나 응급의료법 등 이미 존재하는 법률로도 공익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의사들에게 불필요한 억압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안전망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다. 필수 의료 서비스 제공이 방해받지 않도록 최소 인력을 확보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합의된 지침으로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면서도 의료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현실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이 문제는 단지 의료인과 정부 사이의 갈등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시민들도 의료 환경 개선에 동참해야 한다. 의료진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그들의 근무 환경이 환자의 치료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의료 환경 개선을 지지하고 정책 변화에 목소리를 낸다면, 의사들의 기본권 보장이 모두를 위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의사의 권리는 곧 환자의 권리이며, 우리의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축이다. 우리는 이 균형의 선을 함께 고민하며, 그들이 지치지 않고 환자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 길 위에 우리 모두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