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머리카락

by 김진오

강남역 12번 출구는 내 하루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곳이다. 병원까지는 걸어서 2분 남짓. 입구만 나오면 금세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작년 5월부터 1년 동안 12번 출구는 에스컬레이터 설치 공사로 폐쇄되었다. 큰일은 아니었다. 11번 출구로 돌아가면 그만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조금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렸다.


강남역 11번 출구와 12번 출구, 그리고 우리 병원 위치


나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 아침이면 반쯤 감긴 눈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저녁이면 병원 일을 마친 피로를 안고 계단을 내려간다. 동선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하루가 조금 더 길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귀찮음이 컸다.


며칠 전 드디어 12번 출구 공사가 끝났다. 새 에스컬레이터는 반짝이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다시 익숙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아침, 12번 출구 방향으로 향하며 기분이 좋았다. '내 자리가 돌아왔다'라고 느낀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다음 날 나는 또다시 11번 출구로 나가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습관대로. 딴생각을 하는 사이 내 발은 익숙한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계단을 다 오른 뒤에서야 "아, 맞다. 12번 출구가 있었지" 하고 탄식했다.


공사를 막 끝내고 새 에스컬레이터를 뽐내는 강남역 12번 출구


몸이 적응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다보다. 습관이라는 건 얼마나 오랜 시간 유지되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또 얼마나 자주 반복되었는지도 중요하다. 지난 1년 동안 11번 출구를 수없이 왕복하면서 지냈다. 그러니 몸이 저절로 그 길을 먼저 기억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슬램덩크에서 서태웅이 한 눈으로 자유투를 쏘면서 말한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 몇 백만 개나 쏘아온 슛이다.'

그런 건가. '몸이 기억하고 있다. 1년간 왕복 300번씩 600번이나 왔다갔다한 길이다.'


병원에서 나는 탈모 치료를 한다. 많은 환자들에게 생활 습관을 바꾸라고 이야기한다. 늦은 시간의 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구부정하게 앉는 자세, 불균형한 식습관. 탈모를 줄이려면 삶의 많은 부분을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동선 하나 바꾸는 데에도 이렇게 오래 걸린다. 습관은 단순한 의지로 바뀌지 않는다. 시간과 반복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습관의 적응 시간은 다르다. 누군가는 쉽게 바꾸고, 누군가는 쉽게 바꾸지 못한다. 중요한 건, 바꾸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다시 해보는 거다. 이제 매일 아침 지하철 개찰구를 나와, 의식적으로 12번 출구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자. 가끔은 11번으로 나갈 수도 있겠지만, 몇 개월 지나면 이제 그런 실수는 하지 않게 될 거다. 반복이 습관을 고쳐줄 거다.

내일은 꼭 12번으로 나가야지, 다짐하며 오늘도 11번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조용히 외친다.

'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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