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환자의 합리적 선택이 왜 비난받을까?

아무튼, 의료정책

by 김진오

실손보험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입한 민간보험이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서 당연한 듯 여겨지지만, 처음 도입된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1세대 실손보험은 급여와 비급여 모두를 100% 보장해 주는 구조였다. 환자 입장에서는 든든한 안전망이었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손해율이 너무 높아 결국 단종되었다. 이후 2세대에서는 자기 부담금이 도입되었고, 3세대에서는 MRI, 도수치료, 주사제 같은 항목들이 특약으로 분리되었다. 4세대부터는 할인·할증제가 본격적으로 적용되었고, 모바일로 청구가 간편해지는 대신 비급여 사용이 많으면 보험료가 크게 오르는 구조가 되었다. 이제 곧 다가올 5세대에서는 중증 질환 위주로 보장이 강화되고, 비중증 비급여 항목은 줄어들 예정이다.

정리하자면, 실손보험은 국민에게 큰 의료비 불안을 덜어주는 장점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수술로 큰돈이 들 때, 실손보험은 가정 경제에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자잘한 진료까지 보장하다 보니 도덕적 해이가 생기고, 보험료는 오르며, 결국 제도 전체가 흔들리게 되었다. 이는 개인이 잘못했다기보다는 제도 설계의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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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도 실손보험 덕을 본 이야기가 많다. 한 친구는 무릎이 안 좋아 도수치료를 여러 차례 받았는데, “실손보험 없었으면 부담돼서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친척 어른은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다초점 렌즈가 보험 보장이 되는지 여부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보험이 된다면 본인 부담은 수십만 원에서 끝나지만, 보험이 안 되면 몇 백만 원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후배는 피부과에서 여드름 흉터 치료를 받을 때, 레이저 시술이 실손 청구가 가능한지 확인하고 나서야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환자가 보험을 활용하는 건 지극히 합리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들이 반복되면 보험료가 계속 오르고, 보장은 줄어든다. 언론은 이를 두고 “보험 남용”이라고 부른다. 마치 누군가가 제도를 악의적으로 쓰고 있는 것처럼 몰아가지만, 사실 환자들은 단순히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 안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더 많은 보장을 원하고,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실손보험 청구 건수의 대부분은 외래나 경미한 진료에서 나온다. 이는 환자들이 보험을 악용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자잘한 진료까지 보장하는 제도의 특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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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부모님과 나눈 대화도 생각난다. 아버지는 “옛날에는 큰 병이 생기면 집안이 무너진다고 했는데, 지금은 실손보험이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 된다”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런데 왜 보험료가 해마다 오르느냐”며 고개를 갸웃하셨다. 나는 설명했다. “엄마, 사람들이 다 합리적으로 보험을 쓰다 보니 보험 재정이 버티지 못하는 거예요. 잘못한 건 사람들이 아니라 제도죠.” 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때 나는 실손보험의 역설을 뼈저리게 느꼈다.

경제학에서도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개인이 합리적으로 행동했는데 사회적 손실이 생긴다면, 그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제도의 부족이다. 실손보험이 바로 그렇다. 환자와 의사가 제도를 악용했다고 손가락질하기보다, 왜 그런 유인이 만들어졌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제도가 사람들을 그런 행동으로 몰아넣었을 가능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실손보험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치료를 선택할까? 아마도 정말 꼭 필요할 때만 병원을 찾을 것이다. 대신 병원은 지금보다 더 조용해질 테고, 환자와 의사의 대화는 더 신중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손보험은 분명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제도였지만, 동시에 그 든든함 때문에 제도가 흔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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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장에서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싼 게 비지떡이지. 하지만 필요 없는 건 사지 마라.”

그 말은 내게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실손보험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더 넓은 보장을 원하고, 더 적은 부담을 바라지만, 그것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그러니 그 선택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잘못된 건 그 선택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제도다.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은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제도의 그릇이다. 그리고 그 그릇은 더 튼튼하고 공정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의 작은 합리적 선택들이 사회 전체의 손실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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