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의료, 사람이 남게 하는 힘

아무튼, 의료 정책

by 김진오

며칠 전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가 이런 말을 꺼냈다.

“선생님, 여기 오려면 하루가 다 갑니다. 우리 동네에는 진료해 줄 병원이 없어요.”

진료를 위해 서울까지 올라온 환자였다. 그가 말한 사정은 곧 지방 의료 현실의 축소판이었다. 지역에서 제대로 진료를 받기 어려운 환경 때문에 하루를 통째로 비워야 했던 것이다. 만약 자녀가 열이 나거나, 노부모가 급히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면 상황은 얼마나 더 절박했을까. 지방의료의 격차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삶의 질과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


최근 국회에서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의사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의과대학 입학 단계에서부터 일정 인원을 지역 전형으로 선발해 장학금을 주고, 졸업 후에는 최소 10년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안은 곧바로 논란을 불러왔다. 10년 의무복무는 직업 선택과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적 문제 제기가 있었고, 재정 부담을 두고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대립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대학 자율성이 훼손된다고 우려했다. 정치권에서는 “제2의 의정 갈등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방의료 공백을 두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실이 문을 닫는 일이 이어지고, 젊은 의사들은 계속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이 흐름을 멈추지 못한다면 환자는 결국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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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례를 보면 해법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지역쿼터 제도를 운영했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설립한 '자치의과대학(自治医科大学, Jichi Medical University)'을 통해 지역 의료 인력을 길러왔다. 입학 단계에서부터 장학금을 조건으로 지역 근무를 약속받은 학생들은 졸업 후 실제로 높은 비율로 지역에 남았다(Matsumoto et al., 2021). 하지만 제도가 지나치게 경직되자 의무를 회피하려는 움직임도 생겼고,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회적 논란도 뒤따랐다.

미국은 다른 접근을 택했다. 국가보건서비스단(NHSC)은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탕감을 제공하며 젊은 의사들이 스스로 취약지에서 일하도록 유도했다. 놀라운 것은 의무기간이 끝난 뒤에도 상당수가 계속 남았다는 점이다. 억지로 묶어두지 않고, 남고 싶게 만드는 장치를 마련한 결과였다(HRSA Report, 2023).

캐나다는 또 다른 모델을 보여준다. 아예 의과대학 교육을 분산시켜, 학생들이 처음부터 시골 마을에서 배우고 생활하게 했다. 학부 과정과 전공 과정을 지역에서 함께 보내다 보니, 배운 곳에서 곧바로 살아가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공부한 곳이 곧 일터가 된다”는 연결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모든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억지로 사람을 붙잡아 두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남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생각해 보면 의사가 남는다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이 살아갈 집이 있어야 하고, 아이가 다닐 학교가 있어야 하고, 배우자가 일할 일터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삶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결국 의사와 환자가 함께 머물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지역의사제 논란은 지금 시끄럽지만, 그 본질은 단순하다. 환자가 더 이상 불안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제도가 어떤 형태로든 마련된다면, 갈등을 낳는 규제가 아니라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진료실에서 그 환자가 했던 말을 자꾸 떠올린다. 하루를 비워야 서울에 올 수 있다는 말. 환자와 의사가 함께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 힘이야말로 지방 의료를 살리는 열쇠가 아닐까.


글: 김진오(대한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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