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의료정책
며칠 전 뉴스를 보다가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과연 사회에 유익한가.”
서울고등검찰청 안성수 검사가 의료정책연구원 강연에서 던진 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형사처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의료라는 건 늘 단순하지 않은데, 법은 그 복잡한 과정을 결과 하나로만 재단하려 한다. ‘최선의 처치’라는 말은 법조문에 있지만, 그게 정확히 뭘 뜻하는지는 누구도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상황이 어떤 법정에서는 무죄, 다른 법정에서는 유죄가 되기도 한다. 의사로서는 언제든 법정에 서게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따라붙는다. 환자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만,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끼어드는 순간이 있다.
그렇다고 처벌을 세게 한다고 문제가 풀리진 않는다. 오히려 방어적 진료만 늘어난다. 환자를 위해 과감하게 해볼 수 있는 선택이 줄어들고, 사건이 드러나는 걸 막으려고 문제를 숨기게 된다. 안전을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생명을 구할 기회를 멀어지게 한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떠오른다. 만약 길에서 누군가가 쓰러져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외라면 지나가던 의사가 주저 없이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할 것이다. 혹여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법은 그 의사를 보호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상황이 다르다. 선의로 나섰다가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오면, 도움을 준 의사가 책임을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마음보다 ‘괜히 개입했다가 내가 처벌받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법이 사람을 살리려는 본능마저 가로막는 사회, 그게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다른 나라들은 이미 다른 길을 택했다. 영국은 NRLS라는 제도를 통해 의료사고를 숨기지 않고 보고하도록 했다. 보고한 의료인은 처벌을 받지 않고, 대신 그 경험은 학습 자료로 쌓인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사회적 자산이 되는 것이다. 미국도 PSQIA라는 법으로 의료사고 보고자에게 법적 보호를 보장한다. 단순히 의사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환자에게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장치다. 실수를 벌주는 대신, 실수에서 배우도록 한 제도 덕분에 의료인들은 법정의 공포가 아니라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다.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안전망은 더 튼튼해진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잘못했는가’에서 끝내지 말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로. 결과만 보고 죄를 묻는 방식으론 환자도, 의사도 지킬 수 없다. 불완전함을 죄로만 남기지 말고, 모두가 함께 배우는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형사처벌의 공포 속에서 진료를 이어가는 사회는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그렇다고 인간의 실수를 무조건 덮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실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 안에서 배움을 끌어낼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의사가 환자를 돕는 순간, 두려움 대신 용기가 먼저 떠오르는 사회.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사회. 그게 진짜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 아닐까.
글: 김진오(대한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