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동계 올림픽을 보며 떠올린 기억
이번 2026년 동계 올림픽에서 최가온 선수의 인터뷰를 보던 중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금메달이 목표였고, 당연히 1등을 하고 싶었다는 말은 특별하지 않았는데, 그 다음 말이 오래 남았다. 경기 내내 클로이 킴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게 스스로도 놀라웠다는 말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같은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선수인데, 응원을 하고 있다니.
중계 화면에는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경기 도중 최가온 선수가 넘어졌을 때 클로이 킴이 다가가 걱정하는 말을 건네는 장면이 있었고,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는 최가온 선수의 연기를 언급하며 축하를 전하기도 했다. 긴 장면은 아니었지만, 그 짧은 순간들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지는 것이 있었다.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진짜 스포츠구나. 상대를 이겨야 하는 경기이면서도, 그 이전에 서로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기록과 순위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과 응원하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고백. 그 말이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큰 학회에서 발표를 하던 날이었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도, 이상하게 내용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청중이었다. 특히 앞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논문에서만 보던 이름들, 참고문헌의 저자들, 학회장에서 멀리서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던 의사들이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발표를 시작하면서도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내가 지금 이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실감나지 않았다. 발표를 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시선이 앞줄로 갔다. 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슬라이드를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발표가 끝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었다. 존경하던 한 분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순간적으로 긴장이 확 되었다. 그 분의 여러 논문을 읽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듣고 답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고 있었다.
'내가 이 사람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그전까지는 늘 배우는 입장이었다. 강의를 듣고, 논문을 읽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같은 주제 위에 서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학회에서 그 분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조금씩 늘어났다. 복도에서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같은 세션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고,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제는 익숙한 동료이자 동지가 되었지만, 가끔씩은 그런 말을 하게 된다.
내가 당신들과 이렇게 함께 일하고 있다니, 여전히 신기하다고.
최가온 선수의 인터뷰를 보며, 그 감정이 무엇인지 다시 떠올렸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과,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나 역시 내 분야에서 가장 잘하고 싶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고, 더 앞서 나가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동료들을 응원한다. 그들이 하는 연구를,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어쩌면 그것은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보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마음이다. 혼자서 시작한 길이 아니라, 누군가의 등을 보며 시작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무대에 서게 된 순간에도, 경쟁과 존경이 함께 존재한다.
올림픽 중계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시간과, 서로를 바라보며 걸어온 과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여전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학회에서 오래전부터 이름만 알고 있던 의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세션에서 발표를 하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지만, 여전히 그 순간들이 반갑고 의미 있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보며 시작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내 등을 보며, 이 길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