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세상의 가르침은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다. 인생의 답은 노력 없이 그냥 주어지는 법도 없다. 그런 세상이 또 야속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흐름이 참 속절없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빨리 지나가는 시간들을 다시 되돌려 보고 되짚어 보면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빠른 것 같이 느껴지는 오랜 시간을 우린 촘촘히 버텨 온 셈이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쫓기며 살았고, 어떤 이름 모를 책임과 열망에 짓눌려 살았다. 잘 살아내고 싶었는데, 내겐 생각보다 그 살아냄이 스스로 힘들고 고됐던 모양이다. 가끔 추억을 끄집어 내다보면, 울컥하거나 표정이 찡그려진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고됨 때마다 내 곁엔 늘 책이 있었다. 집안에선 종손에 장남이라 그 흔한 사촌 형들마저 없었다. 그러니 어디 딱히 조언을 들어 볼 곳도 없었고, 대부분의 문제는 언제나 늘 처음이고, 제 스스로 찾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난 결론이 늘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난 겉 멋이 아닌 실용 독서에 일찍 눈 떴다.
내가 책을 통해 얻은 최고의 선물은 자기신뢰감이다. 실용 독서에 기대 처음 겪는 상황에서도 답을 찾았다. 그리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정말 하루도 빼먹지 않고, 1,000일 가까운 시간을 매일 그리 일찍 일어날 수 있냐고. 그럼 나는 답한다. '생각'이란 것이 내게 들어서면 가능해진다고.
여기서 '생각'은 옛 어른들이 했던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넌 왜 그렇게 생각 없이 사니?"와 같은 그 '생각', 맞다. 나는 그 깨달음의 순간에도 책을 읽고 있었고, 그런 생각이 그 '생각'에까지 미치자 난 조용히 책을 덮고, 한참 동안 창밖을 다소 멍하니 바라다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찾은 '생각'으로 나는 생각이란 것을 하면서 책을 읽는다. 습관처럼 버릇처럼 늘 곁에 두고 책을 애써 찾아 읽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독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다. 일명 '독서 되새김질!' 독서는 입속으로, 뱃속으로 음식을 구겨 넣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소화를 시켜야 한다. 우리가 먹을 때 꼭꼭 씹어 먹거나 열을 가해 조리하는 이유는 바로 음식물의 소화를 돕기 위해서다. 그러니 독서도 그냥 읽지 말고 애써서 읽어라. 그래야 내 것이 빨리 그리고 제대로 그리고 많이 된다. 소화하기 쉽다는 말은 내 몸에 이로운 영양분은 빨리 전달하고 그 쓸모를 다한 나머지는 잘 배출된다는 걸 뜻한다. 나는 지금도 독서는 그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다음은 현실로의 실천이다. 책으로 만든 생각이나 지식을 머릿속에만 고이 모셔두지 말라. 꺼내고, 베풀고, 자꾸 써라. 그걸 내게 써도 좋고, 남을 위해 써도 좋다. 마치 죽은 것처럼 쌓아두지만 말고, 숨을 한껏 불어 넣어 산 것처럼 세상으로 돌려보내라. 그게 독서로서 할 일이다. 안으로는 소화시켜가며 애써 읽어 내 것으로 만들고, 쌓인 생각과 지식은 숨을 불어 넣어 세상에 돌려줘라. 모름지기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로 인해 삶을 바꿔 본 사람이라면 그리해야 마땅하다. 좋은 책에서는 항상 너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란 말을 안 한다. 자꾸 베풀고 나눠 주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한다고, 그게 결국은 따지고 셈 해보면 너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이다.
그리 밖으로 내어 베푸는 일 중에는 쓰는 것도 있다. 말 그대로 글쓰기는 소화된 생각을 현실로 내어주는 일을 그대로 실천하는 행위다. 정리만 해주는 것도 좋고, 꾸짖는 것도 좋으며, 먼저 겪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것도 좋다. 그렇게 독서에 글쓰기는 날개를 단다. 훨씬 멀리 그리고 자유로워지라고 날개를 달아준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꺼내 쓸 수 있는 기술은 찐 행복이다. 눈으로 읽어 작가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내 받아들인 작가의 생각을 소화시켜 내 생각과 함께 잘 짜 맞춘다. 새 삶을 위한 진짜 변화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읽고 소화시켜 쓰는 일을 계속해 온 사람은 답하기 쉽지 않은 어려운 질문에도 정답이 아닐지 모르지만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낼 줄 안다.
독서 이야기를 끝내고, 내가 마음을 써내기 시작하게 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처음 시작은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 그런 게 없었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없다. 그저 도피처로 택한 도서관에서 책으로 시간을 때우다가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쳐 '생각'이란 씨앗을 얻게 됐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갖게 된 '생각'이 욕심을 냈고, 그 욕심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세웠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기억난다.
그러다 욕심이 또 한 번 생겼다. 이번엔 쓰기다. 아쉽지만 지금도 잘 하진 못한다. 그런데 그 기쁨과 맛을 몰랐다면, 아마 난 평생 후회했을 거란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글을 잘 써보기 위해 내가 썼던 방법은 다소 무식하고, 단순한 방법이었다. 책을 많이 읽어서 눈에 익혀 둔 문장은 글을 쓸 때 일종의 가이드가 됐고, 글 쓸 욕심날 때부터 챙겨 읽었던 책은 늦바람에 불을 붙였다. 이후로 내가 한 일이라곤 계속 가이드를 만드는 독서를 하고, 글 책을 교과서 삼아 계속 썼다. 그냥 쓰고 쓰고 쓰고 또 썼다.
무조건 글은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 그냥 애만 쓰지 말고, 작법과 문장력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방향 잡아 노력하면, 나아지는 속도도 한층 빨라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꺼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고. 드디어 생각 끄집어 내는 기술이 생긴다.
눈으로 읽는 독서는 글 쓴이의 생각을 뽑아내고, 글로 쓰는 것은 책으로 얻었거나 일상에서 떠오르는 깨달음 같은 생각을 다시 가공해 새로운 생각을 엮어내는 일하고 보면 된다. 그렇게 쓰다 보면 머리가 저절로 열린다. 머리가 열리면 아주 쓸모가 많아지는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이 달라지고, 변화된다. 소위 말하는 열린 사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필사를 권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권하지 않는다. 용기가 안 나는 사람을 위해 어려운 책 말고 가벼운 에세이나 시집 필사를 권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도 종이 위에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면서 하는 필사는 좋아한다. 어디선가 필사를 '손으로 하는 명상'으로 빗댄 것을 보고 격하게 공감했다.
아무튼 필사를 하든 타이핑을 하든 일단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부터 극복해야 한다. '쓰기'라고 해서 무조건 종이에 펜으로 쓰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니까, 쓰고 싶은 글을 워드에 정리하든 블로그에 포스팅하든 상관없다. 도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손으로 쓰는 게 부담스럽다면 각자 가장 편안한 도구를 선택하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 쓰든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