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 이야기
어때요? 당신은 지금 어떤가요? 행복한가요? 무얼 열심히 하고 있지만 동경했던 삶이 아니라 무겁기만 하고, 개운하지 못한 힘겨움, 겪고 계시진 않나요? 뒤늦게 깨달은 거지만 세상을 그냥 열심히만 산다고 드라마나 영화처럼 저절로 꿈이 이루어지는 법은 없었습니다. 편하고 안전하다는 이유로 우린 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고 스스로 그 안에 안주하는 일에는 아주 능숙합니다.
삶에는 언제나 변곡점이란 것이 있습니다. 누군 그걸 기회라고 부르고, 누군 그걸 절망이라 부르죠. 기회건 절망이건 '이건 기회다. 저건 절망이다.' 딱 이름표가 붙여진 것도 아닙니다. 내 안에서 무언가 계속 쌓여가다가 외부적인 어떤 계기나 사건을 만나 폭발해버리는 겁니다. 그 폭발의 힘으로 삶의 방향이나 자세가 변하는 거죠. 삶의 핸들을 꼭 잡고 있다가 전복되지 않고, 내가 원하는 행선지로 방향을 잡으면 기회인 거고, 전복되면 폭망, 넋 놓고 있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면 절망입니다. 그럼 우린 또 다음 번 변곡점을 기다려야 합니다.
영화 [루디 이야기]의 주인공 루디는 가톨릭 집안에서 대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났습니다. 형제들은 무려 12명, 화목했지만 가난했죠. 어린 시절 그의 유일한 희망은 팬으로 아버지와 함께 열렬히 응원했던 노틀담 대학의 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루디는 대학에 갈 만큼 똑똑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그런 루디를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제철 공장에 취직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실제로 몽상을 즐겼던 루디의 고등학교 성적은 형편없었죠. 꿈이라고 해서 현실의 벽을 맘대로 뛰어넘을 순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루디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뜻대로 제철공장에 취직하고, 쉐리와 약혼하게 됩니다.
꿈을 버리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울타리는 너무나 견고하고 단단했죠. 꿈만 있었지 그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쳐둔 울타리도 아닌데, 그 울타리가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둘도 없는 절친이었던 에디가 제철 공장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어 버립니다.
루디는 절망합니다. 언제나 곁에 있어 줄 것만 같았던 위로가 사라졌습니다. 아버지도, 선생님도, 약혼녀 셰리조차도 실현 가능성을 믿어주지 않았던 꿈을 늘 응원하고 격려해 주던 친구가 곁에 없습니다. 부인해도 이젠 어쩔 수 없는 현실, 장례식장에서 그를 떠나보낸 루디는 무기력해집니다.
삶의 긴장감이 풀려버린 루디는 사랑하는 친구가 준 선물 같은 짬을 이용해 꿈에 그리던 노틀담 대학 교정을 구경 갑니다. 꿈속에서 그리던 노틀담에 발을 디딘 루디는 그동안 아버지가, 선생님이, 약혼자가 씌운 울타리에서 벗어나 보기로 합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합니다.
친구의 죽음으로 그렇지 않아도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 상태, 루디는 절망이 아닌 기회로 방향타를 잡습니다. 다시 노틀담 대학이 있는 사우스 밴드로 가 입학 신청을 하지만 멋지게 거절당합니다. 대신 근처에 있는 주니어 칼리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입학을 허가해 주겠다는 학장 신부의 확답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루디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됩니다.
고등학교 시절 형편없던 그의 성적은 노틀담 대학보다 다소 낮다는 쥬니어 칼리지도 버거웠습니다. 거기다가 진짜 꿈인 노트담 대학 정식 풋볼 선수가 되기 위한 개인 훈련도 병행해야 했으니 정말 쉽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매 학기마다 입학 신청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입학 거절! 마음대로 되지 않는 꿈에 지친 루디는 모처럼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버지와 형제가 있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약혼녀 셰리는 형의 연인이 되어 있었죠.
친구의 죽음이란 변곡점을 계기로 루디는 용기를 내어 자신을 가둔 울타리를 부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아버지와 형제, 약혼녀가 아닌 스스로 울타리를 다시 쌓고 있었던 거죠. 아버지, 형제, 약혼녀의 부서진 울타리를 스스로 고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안에 안주하고 싶어 한 거죠. 그걸 루디는 깨닫게 됩니다.
루디는 쌓아 올리던 울타리를 부수고, 다시 노틀담으로 돌아와 결국 입학 허가를 받아 냅니다. 그리고 드디어 풋볼팀 입단 테스트를 받죠. 선발을 위한 15일간의 테스트, 운동 능력도 부족하고, 풋볼 하기엔 너무 왜소한 키가 감점이었지만 끈기와 열정으로 결국 루디는 꿈에 그리던 노틀담 대학 풋볼팀의 선수가 됩니다. 그렇다고 정식 경기에 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1군 선수들의 연습 상대에 불과했죠.
학업과 몸이 부서져라 최선을 다해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합니다. 노틀담 풋볼 정식 경기 출전이라는 꿈을 위해! 그에게 노틀담 대학 풋볼팀은 개인 영달의 도구가 아니라 절대 깨트려선 안되는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그 보물을 위해 싸우는 전사 1군 선수들은 자신의 정식 경기 출전을 가로막는 경쟁자이자 소중하고 고마운 동료였죠. 그런 마음으로 연습을 마치 실전처럼 치르는 루디! 하지만 그런 1군 선수들과 충돌이 생깁니다.
키 작고 왜소한 루디가 연습에서 마치 실전처럼 달려들자 그가 다칠 것을 우려한 걱정이 발단이 된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짜증을 퍼붓고, 화를 내던 1군 선수들은 루디의 속마음을 듣고 되돌아 나옵니다.
너희는 실전을 나가기 위해 연습을 하는 거야!
내가 왜소하고, 서투르다고 연습을 연습처럼 하면,
너희에게 정말 도움이 되겠어?
마침내 루디의 이름은 노틀담 대학 졸업 전 정식 경기 대기 선수 명단에 올라갑니다. 풋볼 선수로서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풋볼팀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얻은 거죠. 풋볼팀을 위한 그의 헌신을 인정한 동료 1군 선수들의 도움으로 그는 멋진 꿈을 이룸과 함께 무사히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불리는 노틀담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루디의 이야기는 우리가 꿈꾸던 일반적인 성공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가 꿈꾸던 노틀담 풋볼팀 선수로 정식 경기에서 활약한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루디는 그도 모르는 사이 명문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최고 명문 풋볼팀의 힘든 훈련 2년을 마친 엄청난 스펙을 쌓게 됩니다. 여정을 마친 그는 이미 과거의 루디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완전한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가치 있는 일을 이뤄낸 겁니다.
지금 당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루디를 떠올려 보세요. 당신이 원하는 꿈을 이룰 거라고 그 누구도 믿지 않던 그 참담함 속에서 그가 어떻게 해냈는지 더듬어 봅시다. 루디는 쉽게 인정해 주지 않아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끝까지 해냈습니다.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감명받게 되는 이유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개인적이긴 하지만 꿈꾸던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갇힌 울타리를 깨고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뒤가 아니라 그걸 깨고 나오는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겁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가족이 만든 울타리, 친구들이 만든 울타리를 깨고 밖으로 나가는 거죠. 물론 또 걷다 보면 학교가, 살던 동네가, 지역 사회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럼 또 깨부수고, 전진하고, 그런 과정의 반복이 계속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진 못해도 엄청난 스펙은 노력한 사람에게 주는 삶의 선물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