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출판업계는 지난 2021년을 2020년에 이어 양적 성장을 기록한 한 해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생활'이 그 원인인 셈이죠. 전문가들은 본의 아니게 갇혀 지내야 하는 사정이 도서 판매량을 2년 연속 증가시켰다고 평가합니다. 교보문고에서 발표한 자사 도서 판매량을 보면, 2020년에 비해 2021년은 도서 판매량이 6.3% 증가했습니다. 특히 만화가 56.0%, 경제경영은 22.1%로 아주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죠. 반면, 시나 에세이는 -8.6%, 여행 분야는 -4.1%로 3년 연속 거꾸로 줄어듭니다.
이것은 출판의 장벽이 낮아지고 누구나 손쉽게 책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출간되는 책의 양이 늘어난 게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들어 책 쓰는 과정을 통해 자기계발과 심리 치료를 병행하고, 이를 기획 단계부터 도와주는 1인 출판사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당연히 작가의 숫자도 늘어났죠. 그렇다고 출판 시장 상황이 좋아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문턱이 낮아져 지식과 정보의 해석 다양성은 높아졌지만 그 질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가끔 "책을 읽는 독자보다 저자가 더 많은 거 아냐?"라고 느낀 적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과거에 비해 필요에 따라 읽을거리가 많아진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과거 출판 문턱이 높았을 때는 베스트셀러 하면 판매 부수가 굉장했습니다. 그땐 함부로 작가라는 명함 내밀기도 힘들 때였으니까요. 출판사도 "이 정도는 돼야 그래도"라는 일종의 암묵적 작가의 기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양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출판 문턱이 낮아져, 출간되는 책의 양은 늘었습니다. 대신 책 당 판매되는 부수는 급격히 낮아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시장 상황이 작가가 아닌 독자 입장에서 보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출간되는 책의 다양성이 증가했고, 비록 고급 지식은 아닐지라도 요즘 시대에 바로바로 써먹을 수 있는 아주 실용적이고 자잘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이야기들이 많아졌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독서를 처음 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할까? 사실 진짜 고민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출판 업계는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책 판매량이 증가되긴 했지만 출간되는 도서량 역시 늘어났고, '자기 계발을 겸한 작가 되기' 붐이 일어 1인 기획 출판사가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들은 경쟁자가 늘어난 상황에서 다소 정체되어 있는 독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무한 경쟁 상황에 놓이게 된 거죠. 출판사 간 경쟁 상황도 만만치 않습니다. 돈이 없는 출판사는 경쟁에 밀려 초판이나 간신히 내는 정도로 사업을 접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미 온 오프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는 광고비에 수백수천을 투자할 수 있는 대형 출판사의 차지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온라인 서점 알고리즘의 추천 책을 무작정 사는 것도 좀 그렇고, '베스트셀러'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덥석 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오래 읽어온 독서가들이야 나름 기준이나 노하우가 쌓여 걱정할게 없지만 자신을 위해 책을 직접 사본 경험이 없는 초보 독자들은 뭐가 좋은 책인지 찾아내기 힘듭니다. 문제는 자신과 맞지 않는 책을 사고, 그 책에 질려 버렸을 때 발생하게 되죠. 애써 한 번 해보자 하는 동기를 만들고 시작해 열정을 불사르려고 했는데 찬물을 확 끼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인생을 뒤흔들어줄 책, 가슴을 후벼 파는 책, 평생 곁에 두고 삶의 길을 물을 책을 찾아 읽을 수 있을까요?
필요한 컴퓨터를 산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컴퓨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CPU가 뭔지, 램이 뭔지, Nvme가 어쩌고저쩌고 도통 감이 오질 않습니다. 무턱대고 좋은 거란 말만 믿고 구입을 하게 되면,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용도에 맞지 않으니 이것저것 업그레이드를 하게 될 겁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은 컴퓨터 살 때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고차를 살 때도 그렇고, 전자제품이나 패션 제품, 온라인 쇼핑을 할 때도 일어납니다. 그동안 관심이 부족해 제품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고, 제품마다 그 종류와 특성이 워낙 다양해진 탓이죠. 하지만 단언컨대 관심을 갖고, 조금씩 시간을 들여 애를 쓰면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저라고 처음부터 죄다 성공했겠습니까. 실패도 많이 했습니다. 어떤 책은 읽기는 하는데 도통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순간 오기가 생기기더군요. '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한 번 해보자' 했죠. 여러분도 그러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어쭙잖은 책 고르기로 생색(?) 조금 내려는 이유, 여러분은 저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해서입니다. 엄청 힘들었으니까.
그간 컨설팅 경험에 의하면 확률로 책과 한 번 싸움을 걸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단 서점부터 갑니다. 그리고 책을 구입하는 거죠. 규칙은 첫째, 너무 두껍지 않은 200~300페이지 책을 고릅니다. 너무 얇으면 독서 습관 들이기에 쓸모가 없어져 버리고, 두꺼우면 완독하기 너무 버겁습니다. 둘째, 확률! 평소 관심이 있다고 생각되는 카테고리 5가지를 선택하고, 해당 카테고리에서 눈길이 가는 책을 모두 5권 고릅니다. 나름 노하우 하나 더! 작은 서점 말고 아주 큰 서점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종류도 종류거니와 일종의 암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커다란 지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구나 하는 긍정 암시를 스스로에게 거는 거죠.
마지막으로 조금 큰 서점은 북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책 진열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찌든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는 것보다 훨씬 나와 맞는 책을 고를 확률이 높아집니다. 여기서도 나름 노하우 하나 더! 검색엔진에 '큐레이터 추천' 혹은 '북 큐레이터'로 검색해 보세요. 엄청 많은 것은 아니지만 블로거들이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찍은 북 큐레이터 추천 진열대 사진이나 목록 사진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중에서 5권 정도를 카테고리가 겹치지 않는 선에서 골라 봅니다.
이렇게 첫 5권을 골랐다면 부담감을 내려놓고 읽기 시작합니다. 완독의 부담감도 내려놓습니다. 이 5권을 앞으로 초기 독서 방향을 잡아 줄 가이드로 여기세요. '자기 계발서'를 고른다고 가정할 경우, 먼저 내 필요를 떠올려 봅니다. 조언이나 충고가 필요한 건지, 위로가 필요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지혜나 경험이 필요한 건지 살펴보는 겁니다. 지금의 암담한 처지를 벗어나려는 동기 찾기가 필요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자기계발 경험이나 노하우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필요 없고, 진심 어린 작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죠.
① 5권의 책 중에서 원한다는 느낌이 온 카테고리가 있나요? 있다면 해당 카테고리를 1~2개 정도로 정하고, 향후 해당 카테고리 내에서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습니다. ②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위 3가지와 관련된 책을 고릅니다. ③ 만약 첫 5권을 훑어봤을 때 원하는 느낌의 카테고리가 없다면, 다시 한번 해당 과정을 반복해 줍니다.
닥치는 대로, 무턱대고, 끌리는 대로 원 없이 책을 읽고 싶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모든 책을 다 읽어 볼 순 없습니다. 나름 주제넘게 독서법 강의를 하다 보니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물어오는 이가 많습니다. 좋은 책을 찾는 저만의 방법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먼저 서문을 챙겨 읽어 봅니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서문에는 저자의 모든 생각이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상 읽고 나서 좋았던 책은 대부분 서문이 좋았습니다. 짧으면 한 페이지 남짓, 길어도 대 여섯 페이지면 되는 서문을 읽으면 저자가 왜 이 책을 썼고, 해당 주제에 관한 깨달음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죠.
다음은 차례를 읽어 봅니다. 차례는 책에 있어 일종의 설계도 같은 겁니다. 책 쓰는 과정에서 목차를 완성했다면 거의 작업 절반을 해치운 셈이죠.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설계도가 엉성한 건물이 제대로 서 있을 수 있겠어요. 차례를 쓰윽 훑어보는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설계도를 읽을 수 있는 눈썰미를 갖췄다면 짧은 시간에 책이 얼마나 탄탄하게 써졌는지 충분히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소설보다 실용서에서 더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마지막으로 차례 중에서 소제목이라 불리는 한 꼭지 중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페이지를 열어 읽어 봅니다. 시작되는 주장부터 설득하는 중간 과정 끝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필요한 것만 머리에 쏙 넣어주는 구성 필력이라면 합격입니다. 실용서나 에세이와는 달리 소설은 조금 다를 수 있는데 저는 차례 중에서 소제목이 자극적이고, 극적인 변화를 암시하는 곳을 찾아 펼치고 읽어 봅니다. 여기서 극을 전개해가는 작가의 문체나 힘을 가늠해 보고 고르는 편입니다.
아무튼 어떤 방법이든 책을 찾아서 읽고 스스로 변화를 가져보려는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요.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뭔지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그걸 깨달았다면 아마 제 짐작엔 벌써 서점으로 뛰어가고 계실걸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