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로버트 H 슐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항상 당신이 남긴 것과 앞으로 다가올 남은 것을 바라봐라. 잃은 것은 결코 쳐다보지 말라.", 앨버트 하바드는 또 이런 말을 했죠. "살면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할까 봐 끊임없이 걱정하는 짓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합니다. 마치 제게 하는 말 같아서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후회 없이 살고 계신가요? 언제가 유행어처럼 아이들이 "이생망, 이생망" 하기에 그게 뭔가 인터넷에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습니다."란 말의 줄임말이더군요. 그냥 아이들이 장난삼아 하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말 뜻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으니, 돼먹었으니 뭘 해도 안된다는,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조 섞인 체념과 변명입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요? 로버트 H 슐러의 조언 기억하시죠? "잃은 것은 결코 쳐다보지 말라.",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지나온 날 부족했지만 내가 무엇을 남겼는지 기억하고, 오롯이 앞으로 다가올 내 남은 시간에 이뤄낼 수 있는 것에 주목하세요. 우린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신께서는 우리 가엾은 한 인간을 평가할 때 그가 살아있을 마지막 날까지 기다려 그제야 비로소 판단한다 하지 않습니까.
당신 스스로 실패라는 단어를 적기 전까진 당신 미래의 인생 노트, 아직 하얀 백지입니다. 그 흰 종이에 실패를 또 쓰든, 이번엔 성공과 열정으로 바꿔 쓰든 전적으로 당신의 자유입니다. 신마저 당신을 기다려준다는데 섣부른 판단으로 당신 인생 이번에도 망했다 규정짓지 마세요! 내 뜻대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하나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걱정하는 당신 인생 작금의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써야 합니다. 그냥 읽고 끝내는 게 아니라 꼭 써야 합니다. 책을 읽고 저자의 좋은 생각과 지혜를 엿보는 일만으론 부족하죠. 읽기가 자기계발에 있어 없어선 안될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책에 담긴 온전한 생각과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들 순 없어요.
'쓴다'라는 동사 안에는 '명확히 한다'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습니다. 엿 본 생각과 지혜를 소화하고, 발효시킨 다음 명확히 구체화하는 작업이 바로 '쓰기'입니다.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남들이 쉽게 하는 일이 내겐 왜 이렇게 힘든지 스스로 묻고 몰두해 쓰다 보면 그저 '남 생각'이었던 게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기 시작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남에게 배웠으되 지금은 내 것인 '생각'이 드디어 들게 됩니다.
먼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각을 이번에 설명하려고 하는 '생각'과 구분하고, 재정의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생각 즉 잡생각은 무심코 떠올린 생각을 기점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두서도 맥락도 없는 잡념을 말합니다. 이 녀석은 방심하면 단숨에 머릿속을 꽉 채우는 게 특징이죠. 우린 스스로 아주 체계적이고 논리적이게 생각한다 여기지만 결과를 검증해 보면 그런 생각은 참 부질없고 엉뚱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하루 5만 번씩 생각이 뒤바뀐다고 합니다. 이를 환산하면 16초마다 생각이 생각을 바꾸는 거죠. 생각은 그렇게 두서나 맥락 없이 머릿속을 쉽게 장악합니다. 우린 스스로를 아주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다 생각하지만 얼마나 비논리적이며 감정에 무기력한지 많은 연구 결과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변덕 죽 끓듯하는 생각들 속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전략적 생각만 쏙쏙 끄집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로 이럴 때 '쓰기'가 특효약입니다. 쓰면 뒤죽박죽이던 생각이 정리되고, 이리저리 옮기며 경중을 따져 순위를 매길 수 있게 되니까 그렇습니다.
지구라는 '자아' 위에는 지표 같은 '잡생각'들이 죽 펼쳐져 있죠. 우린 책 읽기를 통해 지표 같은 '생각'위에 나에게 유리한 쓸모 있는 '생각' 도시를 건설합니다. 그런데 이게 평면적이기도 하고, 어떤 잡생각은 도시의 고층 빌딩보다도 높아서 일반인은 '잡생각'과 '생각'을 구별해 내기 힘듭니다. 이럴 때 쓰기는 인공위성과 같은 '생각' 하나를 띄운다고 해석하면 쉽습니다. 쓰기로 만들어진 '생각'을 인공위성처럼 궤도에 올리는 거죠. 그럼 '잡생각'과 '생각'을 보다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경험에 비춰 보면, 책을 눈으로만 읽었을 때 한 10퍼센트 정도가 내 이득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다 책을 읽어 비로소 '생각'의 참 맛을 알았을 땐 반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의 이득을 남기게 됐고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혹은 다 읽고 나서 얻은 '생각'들을 1차로 정리하고, 거기에 갖고 있던 기존 '생각'들을 더해 나만의 해석을 내놓는 소위 '쓰기'란 걸 하고부터는 이런 기존 공식들이 죄다 무너졌습니다.
독서의 1단계는 활자를 따라가면서 읽고, 그냥 '정보'를 얻는 수준입니다. 독서 2단계는 활자를 따라가되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수준이고요. 마지막으로 최고 단계인 독서 3단계는 읽어서 얻어낸 저자의 '생각'에 내 생각을 더할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독서의 경지도 '쓰기'의 효용성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어느 성인이 말했죠. 독서의 완성은 '쓰기'라고.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역시 '독서의 완성은 쓰기'입니다. 쓰기는 독서를 통해 저자의 이론과 경험, 그 안에 담긴 생각을 뽑어내고, 곱씹은 다음 이를 소화해 세상에 내놓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산고'에 비할 만큼 쉽지 않은 시간들을 감내해야 하죠. 소중한 생명의 탄생 앞에 저절로 겸손해지는 것처럼 '생각'을 자꾸 쓰게 되면 저절로 겸손해지게 됩니다. 써냈으면서도 내가 써낸 것 같지 않은 결과물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이죠.
아직 주변머리가 변변치 않아 책 읽기와 쓰기의 효용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의도 만들고, 콘텐츠도 만들어 이 깨달음을 한 사람이라도 더 서둘러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지만 이런저런 핑계만 늘고 있네요.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입니다. 이야기를 다 했음에도 마지막 말미에 이렇게 한 줄 더 적어 두는 건 혹시 이 몇 줄로 인해 뜻을 발원하는 분이 한 분이라도 더 생기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제가 그러했듯 저도 당신 열정의 버튼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