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서광 무지랭이의 글쓰기 예찬

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by 인생 해 캡틴 하루

책을 참 오랫동안 읽어 왔습니다. 인생을 통틀어 가족 외 기억에 남을 만큼 유난히 고마운 것이 있다면 그건 제게 책입니다. 어떨 때는 시기적절하게 딱 필요한 지식과 정보로, 어떨 땐 아픈 상처를 현실과 분리 차단해 주는 반창고와 같이 늘 필요할 때마다 제 곁에 있어 줬습니다. 숱한 실패로 자포 자기 할 땐 고꾸라지지 않게 버팀목이 돼줬고, 크나큰 상실감으로 쪼그리고 웅크려 비참해 할 땐 제 지친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줬습니다. 제게 책이란 제 삶에 있어 그런 비중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다가 전 사랑하는 사람처럼 글쓰기를 만났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글을 써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왜 있잖아요. 평소 관심도 없던 이성에 대한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딱 그 사람을 만나 "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상사(相思)가 일어난 날 말입니다. 글쓰기를 제대로 만난 날이 제겐 딱 그날 같았습니다. 드디어 글쓰기가, 진짜 글쓰기가 제 본연의 모습으로 반갑게 저를 찾아온 겁니다.


이 책도 그때쯤 만났습니다. 많이 아팠던 상처가 아직 다 아물기 전이었지만, 그깟 조금 쓰라리고 불편한 아픔쯤 이젠 견뎌낼 수 있는 정도는 됐으니까, 그렇게 난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느 날처럼 들린 서점 진열대에서 책 제목을 읽고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보가 그냥 확 터져 버렸죠. 괜찮다고 생각했던 아픔이 사라진 게 아니라 뼛속에 들어가 있던 겁니다. 제목을 읽고 뼛속으로 생각을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거기에 지난 아픔이 숨어 있었단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그렇게 책은 글쓰기에 관심이 있던 내게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뭐랄까 막막했던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줬습니다.


책은 글쓰기를 위한 사전 작업이나 글 구성 기술보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열망에 집중하는 정신적 몰입에 집중합니다.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를 하나의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를 단순한 기술로 보지 않고, 명상처럼 자신을 수련하는 방법이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글을 보고 감동받을 때는 그 글이 객관적인 사실을 높은 정확도로 기술했을 때가 아니라 글을 쓴 사람과 글 소재 관계에 대한 묘사가 우리에게 공감을 주거나 신선한 깨우침을 전해 줄 때라는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의 글쓰기가 일종의 포장된 내 모습 보여주기였다면 저자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 꾸짖습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이 뭔지, 내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정말 제목처럼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는 거죠. 내 마음에 무엇이 담겼는지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수련이 됐을 때 비로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글들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희망으로 우리의 글쓰기를 독려합니다.


항상 당신이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우린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 무엇을 위해 쓰는가


사람마다 글을 쓰는 목적은 다 다를 겁니다. 현실적인 목적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꿈꿨던 이상적인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런 목적이야 뭐든 상관없다 여기는 사람 중 하나지만 그래도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이상적인 목적을 갖고 글을 씁니다.


어느 이름 모를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진정한 위기의 순간에 진짜 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다." 한동안 이명처럼 귓가에 맴도는 이 말을 화두로 붙잡고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알았죠. "세상 내게 닥친 모든 위기의 해법은 내 안에 있다. 그 어디에도 아닌 내 안에", 또 "세상은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어차피 나를 중심으로 돈다.", "나를 잃어버리면 모든 게 끝장이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린 조금도 쉼 없이 매사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행여 자신을 잃을까 노심초사하죠. 혹여 자신을 잃기라도 하면 잠시도 쉼 없이 잃어버린 나 찾기에 가지고 있는 모든 자산을 올인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아주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나 찾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삶의 일시정지"입니다. 걷고 뛰는 게 아니라 '일시 멈춤'하는 겁니다.


알고 보니 속세에 찌든 사람이었던 허울 좋은 말장난과 글 재주로 전 국민을 속인 혜민스님은 그런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재주 하나는 타고났던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제목의 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릅니다. 그렇게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은 매우 사실입니다.


무엇을 위해 나는 글을 쓰는가. 나름 이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을 얻기 위해 중언부언 서두가 길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저는 멈추려고 글을 씁니다.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뛰면, 숨은 가빠지고, 몸에 열이 올라 땀샘이 확 열립니다. 뭘 흘리는지, 뭘 잃는지도 모른 채,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생의 달음박질을 하는데, 언제 그런 것 신경이나 쓰이겠습니까.


글쓰기를 하려면 일단 멈춰야 합니다. 필사를 하던, 컴퓨터로 타이핑을 치던, 말로 하던 우린 일단 멈춰야 하죠. 그러고 보니 이 "멈춤"이란 말은 목적으로 하는 주된 "생각" 외에 다른 "잡생각"을 멈춘다는 뜻도 되는군요. 이를 다른 말로 이르면 "잡생각을 멈추고, 주된 생각에 하는 몰입"이 됩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네이버의 스마트 에디터 ONE을 열고, 떠오르는 하루 5만 가지의 상념을 억지로 차단한 채,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영현 작가의 "내 인생의 호오포노포토"라는 책 61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좋은 것을 좋게 보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가장 못난 것, 때 묻고 아픈 것, 가장 숨기고 싶은 것을 안고 볼 수 있는 것이 용기입니다."


맞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지금 내게 좋은 건 굳이 애써 시간을 내 글로 옮길 용기를 내거나 해야 하는 이유를 딱히 생각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글을 쓴다기 보다 그냥 일상적인 기록을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진짜 글쓰기는 가장 못난 것, 때 묻고 아픈 것, 가장 숨기고 싶은 것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비로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그런 나를 이 핑계 저 핑계로 말리는 "잡생각"을 멈출 수 있는 그 순간 비로소 글이란 것은 써집니다.


글쓰기는 또 '당면한 문제의 객관화'에도 좋습니다. 무엇을 위해 쓰는가에 대한 두 번째이면서, 마지막 답이죠. "생각"이란 것은 아무리 잘한다고 해봐야 결국 내 안에 있는 겁니다. 현실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내가 내 생각을 보려면 "상상"의 힘을 빌려 와야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 "생각"을 글로 써내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가 "상상"으로만 더듬던 내 안의 "생각"을 진짜 볼 수 있게 되는 거죠.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번민이나 우울증, 중독 같은 마음의 병들은 문제를 "객관화"할수록 극복하기 쉬워집니다.


숲 안에 갇혀 있으면 내가 갇힌 숲의 크기를 가늠하기 힘듭니다. 어디가 어딘지 영 분간이 가질 않습니다. 이럴 때 요즘 해결책으로 흔히 "드론"이란 걸 띄웁니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윙"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드론"을 띄우는 거죠. 그제야 내가 숲의 어디쯤을 헤매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드론(객관화)"을 머릿속 "상상", 그러니까 염력으로 조정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게 쉬울까요? 물론 나중에야 어찌어찌할 수 있겠지만 처음엔 막막하고 무척 힘들 겁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상황을 더 상상해 봅시다. "드론 조종기"가 있다면,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 손에 "드론 조종기"가 들려져 있다면 어떨까요? 물론 다루는 법은 배워야겠죠. 하지만 "염력"을 계발해 조종을 시도하는 것보다 훨씬 훨씬 쉬울 겁니다.


글쓰기가 "드론 조종기"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는 한 "생각"을 객관화해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언제나 휴대 가능한 도구는 "글쓰기"뿐입니다. 제가 아는 한 그렇습니다. 글쓰기를 책 읽기보다 높게 쳐줘야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책 읽기는 읽어 들여 '생각'을 만드는 과정 1단계면 충분한 일이지만 글쓰기는 읽거나 듣거나 경험하게 된 것들로 '생각'을 만들고, '정제된 생각'을 다시 내 밖으로 토해 내는 2단계 과정이 필요합니다.


너무 늦은 나이에 깨닫지 않았나 미련도 남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할 일이죠. 제게 글쓰기는 일종의 남은 인생 사명과도 같은 겁니다. 이끌려 가는 삶이 아닌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삶을 꿈꿀 수 있게 해주고, 하루를 시작했다가 포만감 가득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더 늦기 전에 깨닫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