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매일매일 비슷한 패턴,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살면서 지금과는 다른 미래의 결과를 꿈꾸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어떻게 이걸 그리 잘 안다면서 매일 그렇게 살고 있는가 되묻고 싶다. 성공이란 결과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을 반복하면 그 결과는 뻔한 실패다. 어제와 같은 생각으로 살면서 다른 생각과 감정을 지닌 내가 되기를 꿈꾸지 말라.
오늘은 그걸 할 수 없다고 믿는 당신
대체 무슨 근거로
내일은 그걸 할 수 있다고 믿는 건가?
책을 왜 읽는가? 나는 변화를 위해 읽는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새로운 삶의 변화를 만들고 싶어서 읽는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 원하는 것은 단기적이고 표면적인 변화가 아니다. 나는 궁극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담보로 진정한 삶의 변화를 꿈꾼다.
깨달음이 있기 전 내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이번에 읽는 책은 분명 내 삶을 바꿔줄 거라 굳게 믿었다. 읽으면서 고개가 세차게 끄덕여지고, 가슴이 뭉클한 게 이제 제대로 된 길을 찾았구나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매번 그 잠깐의 꿈은 현실로 돌아와 있기 일쑤였다.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어제와 같은 오늘의 반복이었다. 미련이 남아 다시 서점 매대를 두리번거렸으며, 내 삶을 변화시켜 줄 결정적 '무공 비급'을 찾았다. 하지만 이거다 싶으면 언제나 역시의 반복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문제는 책이 아니라 나였다는 것을. 눈으로 기록된 활자를 읽으며, 페이지를 넘기며, 자아도취에 빠졌던 모양이다. 나는 읽은 책의 권수가 세어져 쌓여가는 것에만 도취되어 진짜 독서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짜 독서를 한다는 것은 읽어서 얻은 백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내가 변하는 것이다. 아니 깨달은 천 가지 중 한 가지여도 좋다. 그렇게 매일 한 가지를 바꾸면 백일이면 백 가지, 일 년이면 365가지나 달라진 나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달라진 한 가지의 생각은 뒤 따라 들어오는 달라진 또 한 가지의 생각과 맺어져 점을 잇고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내가 책을 읽으며 쌓아가는 생각과, '생각과 생각'이 이어져 자가 증식해 낳는 또 다른 생각이 더해지면 변화는 대폭발 즉 빅뱅 한다. 지난 내 삶이 완전히 방향을 트는 것이다.
누차 강조했지만 책은 '생각' 만들기 위해 읽어야 한다. 생각 없이 기록된 활자만 따라 읽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절대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책은 작가의 기록대로도 읽고, 길러진 체력 좋은 내 생각을 세워서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진짜는 그렇게 얻어진 생각을 행동으로 옮김에 있다. 진짜 삶이 변하고 싶다면 변화를 위한 행동으로 반드시 옮겨야 한다는 말이다.
익숙해진 세계를 깨뜨린다는 것은 이어지는 불편함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린 늘 해오던 대로 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고, 모든 삶의 방식을 동기화시킨다. 언제까지? 뭐가 잘못됐다고 절실히 느끼게 될 때까지.
선인들의 삶의 지혜를 빌리자면, 뭔가 잘못됐다고 절실히 느낄 땐 아주 되돌리기 힘들거나 선택의 여지가 하나 혹은 그보다 못한 반쪽 남짓 남은 위기 상황일 때가 많다.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다.
독서도 이 지혜로운 통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익숙해진 주제는 하루에도 맘만 먹으면 세네 권은 거뜬히 읽고 이해할 만큼 손쉽다. 간간히 책을 읽다가 멈추고, 생각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어서 스스로 내게 맞는 가장 이상적인 독서법이라고 위안한다. 하지만 독서에서 그런 안이한 태도는 독약이다.
당신이 안주한 사이 주변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으로 머물러 있다면 당신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당신이 주변인들보다 조금 더 앞서갈 수 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당신만 빼고 모두 변한다. 절대는 아니지만 당신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뒤처지게 된다. 심지어 당신을 따라오려면 까마득히 멀었다고 생각한 친구가 당신을 앞지르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앞에서 말한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바로 거기다.
그러니까 한 번쯤 평생 읽을 것 같지 않은 종류의 책을 사서 읽어봐라. 에세이를 주로 읽는 사람은 무협지나 부동산 경매 실용서를,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고전 철학이나 마케팅, 영업에 관한 실용서를 읽어보는 것이다. 두렵고 귀찮지만 다른 세계의 문을 용기 내 활짝 열어젖혀 봐야 한다. 선인들이 말하는 다른 관점, 시야를 갖는다는 의미와 독서를 하는 그 자체가 곧 공부고, 경험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동시에 깨닫는 축복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한 권의 책을 읽고, '왜?'라는 의문이 하나라도 들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독서를 했다고 할 수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맹목적인 독서는 지양되어야 한다. 책을 쓸 정도가 되니 저자의 말은 무조건 다 옳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저자도 사람일진대 자신만의 편견이나 아집이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타당하다.
글을 읽다가 평소 생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읽기를 멈추고 '왜?'라는 질문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우리가 꿈꾸는 삶의 변화는 당연함과 당연함 사이에 "생각"이란 것을 끼워 넣어 '왜?'라고 반문할 때 일어난다. 너무도 당연하게 반복되는 자동화된 습관들이 내게 득(得)이 아닌 실(失)이 될 때, 아무리 앞으로 한 보 전진하려 해도 실(失) 만큼 상쇄되어 결국 거꾸로 뒷걸음질 치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 당연했던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 바뀌었다. 스티브 잡스는 기존 스마트폰이 갖춘 인터페이스(UI)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스마트폰 '애플 아이폰 1세대'를 만들어 냄으로써 "이노베이션(혁신)"이란 키워드를 유행시켰다.
달라지고 또 변하고 싶다면, 습관화된 당연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자동화된 습관 사이에 "생각"을 끼워 넣고, 의문이 생긴다면, 끝없이 "왜?"라는 질문을 퍼부어야 한다. 우리는 '틀린 것'을 찾는 게 아니다. '다른 것'을 찾는 것이다. '왜?'라는 반복된 질문을 통해 찾은 다름이 내 삶을 변화시킬 때까지 끊임없이 끊임없이 찾는 것이다.
기대보다 큰 것이 거저 얻어졌다고 느끼거나 해내기 쉬웠다는 생각이 들면, 우린 반드시 그 일에 의구심을 가져야만 한다. 자동차 수동기어에서 단수를 높이지 않는다고 차가 멈춰 서진 않는다. 하지만 거저 얻을 수 있는 가속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다.
어차피 성공이란 동일한 기준 시간 안에서 얼마나 더 많이 혹은 더 멀리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치열한 싸움이다. 내 남은 인생이나 경쟁자를 비교해 같은 시간에 더 많이 갖거나 더 멀리 가야만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여기서 말하는 '더, 더, 더'란 단계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가속 효과인 거다.
그러니까 인생이나, 일이나, 책 읽기나 발전이 있으려면 편안함을 경계해야 한다. 안주하고 머물면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헤어 나오기 힘들다. 매사 신경을 곤두세우고 편안함을 항상 경계하며 살긴 힘들겠지만 최소한 늪에 빠지진 말아야 한다.
독서란 지극히 개인적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쉬운 책이 누군가에겐 어렵다. 또 누군가에겐 재미있는 책이 지루하기만 하다. 그러니까 어렵다는 책 역시, 뾰족한 경계선이나 구분선이 없는 게 맞다. 내가 읽으려는데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 내겐 어려운 책이고, 그런 책에 도전하는 게 단계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독서법이다.
책이 너무 술술 읽히거나 책을 읽어도 반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면 이젠 단계 높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성취감, 새로운 동기부여의 효과가 가장 크고 지대하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을 결국 해냈을 때의 쾌감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과감히 도전하길 권한다. 어렵거나 아주 두꺼운 책을 완독하고, 마지막 겉표지를 덮을 때 기분은 가히 그동안 느껴본 감동 중에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