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빈손으로 태어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책과 사랑이다. 누군가를 내 목숨보다 사랑한다면 살아가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고, 살아가는 법에 대한 진지한 조언 가득한 책까지 들었다면 세상 겁낼 것 하나도 없다. 이 두 가지를 믿고 세상 걷는 걸음, 거칠 것이 없어진다. 이보다 더 든든한 좌군 우군이 또 있을까?
목표를 빙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더라도 나는 움직였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다. 그것이 겁나서, 쓸데없이 느껴져서, 가만히 제자리에 머물면 그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읽기 전과 후, 단 한 번도 날 제자리에 그냥 내버려 둔 적이 없다. 그래서 내겐 독서가 가장 큰 삶의 무기고, 친구며, 연인이다.
책은 읽고 나면 나를 크고 작은 변화 속으로 밀어 넣는다. 어떨 땐 지나치게 과격할 만큼 과감하고, 어떨 땐 이래서 되기나 할까 싶게 소심 쩍다. 어쨌든 밀리라고 전해진 움직임이니 과감하건 소심 쩍 건 나를 제자리에 머물지 않게만 하면 된다. 난 그게 좋다. 움직이는 것에는 절대 편견과 고정관념이 똬리를 틀고 주인 행세를 할 수 없음이다.
모든 깨달음의 과정이 그렇듯 우린 가끔 탄식과 아픔으로 그저 그 순간을 버텨야 할 때가 있다. 이건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영역이다. 책은 또 그럴 때 고맙게도 경각심을 가지라 냉정하고 날카로운 충고를 해준다.
"너 진짜 인생 그딴 식으로 살래?"
"너 부끄럽지도 않니?"
"그걸 바꾸지 않으면 넌 언제나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걸 명심해"
웬만큼 가까워서는 할 수 없는 충고에 찔려 화들짝 놀란 적도 많다. 그런 면에서 책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악역'을 자처하는 고마운 존재다. 그리고 그 책 안에는 아무리 친한 친구, 가족이라도 선뜻해줄 수 없는 매서운 죽비(竹篦)가 가득 들었다.
때론 책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나는 한때 어느 이름 모를 책의 단 한 문장 앞에 멈춰서 정말 넋 놓고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괜찮아, 너만 그런 게 아냐, 그러니까 힘내", 지금도 이 문장만 생각하면 난 눈물이 난다. 그땐 꼬이고 꼬인 일이 너무 힘들어 불안했었다. "이 일을 나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좋은 생각만 해도 극복할 둥 말둥인데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가능성을 심히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깨닫고 나니 난 더 기가 죽어 의기소침해졌고, 극복을 위해 전력을 다하곤 있지만 늘 불안한 상태였다. 그런데 괜찮다니. 너만 그런 게 아니라니.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어찌 됐든 난 그 한 문장으로 위로받았고, 그 위기를 잘 극복한 다음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무엇보다 책이 인생에 큰 도움 되는 때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을 할 때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좋은 습관 아니면 불필요한 나쁜 습관, 둘 중 하나다." 라거나 "문제가 안 풀릴 때는 끝없이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것이 좋다."와 같은 충고들이다. 화자(話者)가 현명한 학자나 박사도 아닌데, 청자(聽者)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명쾌 상쾌 통쾌할 수가 없다.
이처럼 책은 우리가 정체성과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열정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꿈과 비전이 생기도록 돕는다. 내가 늘 책을 가까이하면서 읽는 이유다. 한 눈이라도 팔면 순식간에 코 베어 가는 세상, 빠르고 복잡 다양한 일상 중에도 난 책 읽는 행위를 빼먹지 않는다.
세상의 본질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다만, 우리가 그 본질을 바라보면서 색안경을 끼고, 제대로 초점조차 맞추지 않아 정작 중요한 본연의 모습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나는 내 삶을 마치는 종국(終局)에는 의미 있기를 바란다. 내가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가치 있는 삶이었다고 기억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읽는다.
책은 내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준 참 고마운 존재다. 그저 땜질식 요령으로 살아온 허망한 삶을 뭔가 조금이나마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생각한 절망의 끝에서 아직 두 다리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줬다. 어렵게 일어선 나는 그 터닝 포인트를 계기로 기회를 잡았고,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나는 지금도 매일, 매시간, 매 순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독서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창의적인 습관을 이어간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보기도 하고, 나만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도 하면서 책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나간다. 어떨 땐 괜찮다고, 잘 하고 있다고, 무한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어떨 땐 너 지금 뭐 하냐고, 그렇게 해서 네 인생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겠냐고 호되게 꾸짖는다.
얄궂은 인생은 태어나 성장하며 저지른 제각각의 과오로, 가는 날이 한날한시로 정해져 있지 않다. 오늘 저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내 인생의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 이후에 벌어질 암흑, 이후 다시 지금과 같은 삶을 장담할 수 없다면, 나는 한시라도 더 깨어서 생각하고, 울고, 웃으며, 온 티끌을 다해 사랑하고 생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
그간의 감사함을 나는 고스란히 담담하게 이 책에 담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 엄청난 깨달음과 감사함을 다 표현하기엔 아직 내가 가진 글재주가 너무 미천하다. 내가 깨닫고 있고, 실제로 하는 모든 독서 방법을 더 담으려 노력했다. 자기 주도적이고, 열성적인 사랑의 독서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고, 새로이 조각해가는지도 설명했다.
글을 쓰는 내내 행복했다. 물론 단 한 줄의 진도도 나가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또 하면 된다는 것을 안다. 문은 두드리면 반드시 열린다. 안이 비어 있지 않는 이상 누군가 안에 있다면, 두드리면 반드시 문은 열리게 되어 있다. 그게 섭리요. 이치다. 책이란 것도 이 문과 같아서 계속 두드리면 열린다. 책에는 진짜 사람에 맞먹는 작가의 생각이 들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