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50대가 나의 30대에게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위대한 업적이란 대개 커다란 위험을 감수한 결과"라는 말을 했다. 반박할 여지가 없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도전이란 있을 수 없고, 그러한 도전 없이 우리가 바라는 성공이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니까. 도전하지도 않고, 성공을 바라는 건 복권을 사지도 않고, 당첨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어리석은 자들의 변명과 같다.
위험을 감수한 도전의 결과가 반드시 성공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도전이 없다면, 근근이 버티는 현 상태의 유지는 몰라도, 한 단계 더 나은 상태로의 도약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시점에서 '도전'과 '성공'이란 키워드가 갖는 의미심장함을 조금 더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도전을 통해 성공을 부를 수 있을까? 미국 진로 상담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존 크럼볼츠는 "천 개의 성공을 만든 작은 행동의 힘"이란 저서에서 '계획된 우발성 이론(Planned Happenstance Theory)'을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성공과 도전을 부르는 키워드 5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함께 살펴보자.
먼저 호기심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호기심이 많다. 이들은 사물과 사건, 사람에 대한 지적 호기심들이 대단하다. 그러고 보니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소극적인 경우를 난 본 적이 없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은 좀체 가만히 있질 못한다는 거다. 활동적이며, 아주 적극적이어서 건전지 광고 속에 나오는 에너자이저 같다.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에너지가 차고 넘쳐 백만 번의 팔굽혀펴기를 정말로 할 것 같다는 말이다.
특히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막히거나 벽에 부딪히는 경우, 이들의 지적 호기심은 아주 극에 달한다. 어떻게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좋아하는 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욕구가 강해져 잠시 잊었던 투지와 열정까지 되살린다. 성공을 위한 도전에서 '호기심' 보다 더 좋은 특효약이 없다.
두 번째 키워드는 지속력이다. 맘잡고 노력하면, 반짝하는 효과는 누구나 볼 수 있다. 크든 작든 노력을 들였으니 뭔가 결과가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성공이란 측면에서 보면, 성패는 결과 도출이 아니라 그런 도출된 결과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물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꾸준히 계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도출된 결과를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성장하고 커지면, 그 일은 분명 우리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할 것이다. 그러니 더 많이 공부하고 벌어질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에 대비해 줘야 한다. 그렇게 집요함에 더해 인내 그리고 용기를 지속하면, 그것들은 당신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돼 줄 것이다.
세 번째 키워드는 긍정적인 자세다. 애석하게도 삶은 유한하다. 돈이 많다고 더 살고, 돈이 없다고 덜 사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어도 가는 건 순서가 없다. 아주 극단적이지만 단순하게 나는 우리 삶의 성패는 결국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많이 보느냐, 그런 마음의 수양은 되었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이런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은 지금 설령 눈앞이 캄캄해도 저 끄트머리에 있는 낙관의 불빛을 결승점 삼아 힘껏 내달린다. 그런 낙관은 행운을 불러오고, 마치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그에 걸맞은 준비된 시상을 받는다. 지금의 긍정으로 부족해 보인다면, 긍정을 다시 더하는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 번째 키워드는 과감한 도전의식이다. 우리가 정말로 슬퍼해야 할 일은 저기 보이는 저 별에 닿을 수 없음이 아니라 가고 싶은 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슬픈 일은 가고 싶은 별은 있는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입만 나불거리는 나를 발견했을 때가 아닐까.
분명한 목표가 정해졌다면, 목표를 향해 과감히 몸을 던져야 한다. 안이한 생각에서 당장 벗어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에 나서야 한다. 가치 있는 것들 중에 실수 없이 배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를 한계 짓고 있는 것은 동의 없이 제멋대로 그어진 선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목표 달성을 위해선 멋대로 그어진 선을 넘을 수 있는 과감한 용기 또한 필요하다.
마지막 키워드는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이다. 살다 보면 사건과 사고들은 참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찾아온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다가 긴장했던 방비를 풀 만큼 뜸해지기도 하고, 방심하면 여지없이 뒤통수를 내려친다. 직접 겪어 보면 날 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없다.
언제 뒤통수 맞을 일이 있을지 모르니 매사 긴장된 자세로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걸 평생 해야 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래서 성공했고, 도전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 마지막 키워드인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에 무척 신경 쓴다.
문제는 이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을 성공과 도전 위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얼마큼 부드러워야 하고, 여유로워야 하는지를 아무도 모르는 거다. 이럴 땐 한국인이 흔히 쓰는 '적당히'라는 말이 아주 유용한데, 정말 더도 덜도 다른 말 더 이상 안 보태고 딱 적당히 써야 한다.
물론 아직 더 배워야겠지만 열심히 공부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남들은 모르지만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의 성공적 삶을 위해 얼마큼 부드러워야 하고, 여유로워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겐 그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느껴진다. 쉬다가 엉덩이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야 할 때를 본능적으로 아는 셈이다.
실패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실패는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이제 모든 것이 끝났고, 더 이상 아무런 변화도 없음을 낙인찍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선언적 개념이다.
실패는 애초부터 존재한 적이 없다. 실패는 성공이란 목표를 힘껏 쫓다가 당신이 포기하는 순간부터 생기는 부산물과 같다. 그래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실패가 무서운 것이다. 목표로 한 성공의 과정을 실패로 규정짓고, 마음을 닫아 버리면 당신에겐 영원히 해당 목표에 대한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실패'라는 딱지가 붙어 있을 수 없다.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있는 한 '실패'는 우리가 통상 알던 그 '실패'가 아닌 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실수는 '리스크'란 개념을 '실패'로 잘못 오인하는 경우다. 보통 회사에서 마이너스 평가를 받을 위험, 전직이나 독립했을 때 사업이 실패할 가능성 등을 통틀어 '리스크'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말 이 '리스크'를 '실패'로 봐도 되는 걸까? 당연히 안된다. 앞서 말했듯 '리스크'란 가능성이다. 그런 일이 벌어질 위험성, 일어날 가능성, 그러니까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안심하면 안 된다. '리스크'란 '실패할 가능성'이라고 했으니 방치해두면 '실패'를 불러올 씨앗이 될 테고, 그냥 두면 그 씨앗이 맘대로 자라 뭐가 될지 모르니 마음을 놓아선 안된다. 그럼, 주변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꼼짝 않고 가만히 있는 것만이 상책일까? 아니다. 리스크가 있음에도 일말의 가능성을 보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뭐가 반드시 옳다고 할 순 없지만 나는 후자가 가진 적극적 행동의 힘을 믿는다. 선택은 여러분의 자유다.
다음은 리스크를 줄이고 삶에 변화를 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그래서 실패가 싫어하는 행동 패턴들이다. 하루 24시간 중 딱 10초만 멈춰서 생각해 보자. 삶은 계속되는 모험인데, 평소 정해진 대로 반복되는 일상이 편해 그냥 아무 의심 없이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게 지내다 갑자기 위기가 닥쳐오면 나는 그 고난을 견딜 수 있을까? 난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는 충분히 행복한가? 일상 반복이라는 마약에 취해 아무 일 없는 무미건조한 생활이 그래도 현상 유지라 착각하고 있진 않는가? 생각해 보면 알게 된다. 그건 현상 유지가 아닌 도태라는걸. 달콤함에 취해 숱한 경쟁들을 회피하는 동안 내 순위는 계속해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 모르는 사람에게 아침 인사를 먼저 건네보라. 인사를 받은 사람보다 당신이 몇 배 더 행복할 것이다.
2. 화려한 색깔의 양말을 신어봐라. 남들은 잘 모르는 숨겨진 나만의 비밀이 갖는 묘한 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3. 늘 가던 길 말고 다른 길을 택해 출근해 보라. 당신은 새로운 일과 변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가능성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것이다.
4. 잠시 라디오 주파수를 클래식으로 바꾸는 등 평소 안 듣던 음액 채널로 바꿔보라. 내가 즐거워할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5. 점심때 사무실에 갇혀 있지 말고,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져라. 자연의 가장 대표적인 기능 중 하나가 치유다. 불어오는 바람, 작은 풀 한 포기, 훌쩍 자란 정원수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라.
6. 헌혈이나 장기 기증 같은 이타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라. 사람이 사심 없이 이타적일 수 있다는 건 이미 기본적인 마음 수양이 되었다는 뜻이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에게 실패가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7. 부모님이나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라. 실패를 모르는 사람은 ‘지금’을 사랑할 줄 안다. 저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생의 마지막이 기다릴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묵혀두지 말고,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라.
8. 예전엔 먹어 본 적 없는 채소나 과일을 사서 먹어라. 자꾸 처음인 것, 새로운 것을 찾아서 경험하고 또 경험해라. 변화는 하루아침에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쌓아라.
9. 몸으로 하는 운동이나 춤을 배워라. 경험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다. 몸으로 부대끼면서, 움직이면서도 한다.
10. 남 앞에 서서 하는 프레젠테이션을 경험하라. 내가 가진 생각을 누군가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건 인풋 경험을 소화해 밖으로 내놓는 아웃풋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독자들의 언어로 내가 아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능력이다.
11. 평소 안 하던 말, 표현에 도전하라. (소설 등을 따라서) 사람의 말투, 표현 방식, 목소리 톤, 제스처 등은 그 사람의 또 다른 특성을 나타내는 캐릭터다. 다른 말로 ‘아이덴티티’라고도 한다. 이걸 의식하면서 바꿔보면 그동안 가려져 있던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게 있어 경험은 무척 중요하다. 실제로 겪게 되는 경험은 물론 책이나 영상, 음성 매체 등을 통해 겪는 간접 경험도 포함해서. 경험한 것이 상대적으로 적으면 알게 모르게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 20대 땐 그렇다 치고, 30대가 되어서도 자신의 울타리에 갇혀 누가 시키는 일만 하려는 사람은 단언컨대 점차 설자리를 잃는다.
남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회라 아닐 것 같지만 의외로 당신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회사는 물론이고, 사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실패'라는 결과가 아닌 실패로 이어진 과정과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는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그들은 유심히 살핀다.
여러분도 실패의 왕, 발명가 에디슨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전구에 사용할 필라멘트를 찾기 위해 수백 가지 물질을 갖고 실험했다. 그러니까 원하는 것 찾기에 성공할 때까지 수백 번을 실패 한 셈이다. 하도 여러 번 들어 식상할 수도 있지만 실패를 대하는 그의 이 한 마디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크다.
“또 실패했군. 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또 하나 알게 되었네.”
만약 에디슨이 성공하기 직전인 298번째 실패에 염증을 느끼고 실험을 포기했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도 전구가 뭔지 모를 것이다. 그러니 ‘리스크’를 받아들여 포기하느냐 아니면 ‘리스크’를 밟고 도약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리스크’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앞서 말했듯 '리스크'는 가능성이라 했다. '리스크'를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위험을 알면서도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그만큼 실패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반면, 알게 된 '리스크'를 정리하고, 자료화하여 분석하는 등 정보를 토대로 실패의 가능성을 줄여 나가면 성공의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실패와 성공은 철저한 통계 싸움이다. 우리로썬 어쩔 수 없는 상대적 변수도 많다. 어쩔 수 없는 상대적 변수에 희망을 거는 건 복권 당첨을 노리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난 내가 조절 가능한 절대적 변수에 희망을 건다. 내게 조금 더 유리한 절대적 변수를 찾고, 그걸 하나씩 쌓아 나가면서 조금씩 실패할 가능성을 줄인다.
괜한 개똥철학일 수 있지만 우리가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작하는 출발선을 크게 착각하는 데서 온다. 여러분이나 나나 뭘 했다고, 시작점을 제로점('0', 영점)에 갖다 놓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그 배짱은 어디서 나온 건지. 이 개념을 제대로 깨우친 사람이라면 시작하는 출발선은 '0'(영)이 아니라 실패할 확률 100프로, 그러니까 마이너스 100(-100)부터 라는 걸 알 것이다. 시작 전에 혹은 출발한 초기에 앞서 말한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1차 목표는 손익에서 '익'에 해당하는 플러스가 아니다. 본전 그러니까 '0'영점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일단 본전부터 차지하고 나머지는 절대적 변수 영역의 노력과 상대적인 변수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면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