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대가 너의 30대에게
지금의 삶을 만족하며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드문 일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서 그 정도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이런 걸림돌을 마주하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대기업 인사 관리부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A 씨는 서른일곱 살의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다.
스물세 살 때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회사에 입사해 8년이 되던 서른두 살 때 최연소 과장이 됐다.
따지면, 남들보다 적어도 3년에서 4년은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타고난 업무 감각이 있었고, 거기다 엄청난 노력까지 했다.
항상 최고가 되겠다는 남다른 열정으로 최선까지 다했으니
주변에선 공공연히 그녀가 조만간 인사부장으로 진급할 거라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이대로 가면 얼마 안 있어 최연소 임원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땐 결혼까지 미루며, 모든 것을 올인해 달려온 그녀의 눈앞엔 찬란한 미래만이 펼쳐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의문이 하나 생겼다.
'과연 이게 최선일까?'
크게 괘념치 않았던 의문은 씨앗이 되었고,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마음은 알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리게 됐다.
의문이 자라나면서 마음속 물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처럼 갈증이 났다.
특히 자신의 삶에 뭔가 하나 큰 게 빠졌다는 생각까지 들자 묘한 상실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뭔가 특별할 것도 없는 진부한 일상,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매일 다람쥐 쳇바퀴 안에 갇힌 듯한 허무함.
하루를 꽉 채웠지만 뭔가 모르게 허전했다.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회사 업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제 전문성까지 갖춰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회사가 그녀의 삶에 있어 궁극적인 답은 아니란 거였다.
자신에게 회사란 그저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처해진 무료함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선 회사의 삶과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공존시킬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녀는 오랜 고민을 했고,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생활이 자신에게 필요하단 걸 깨달았다.
지금 당장의 일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생각한 일생일대의 포석이 필요했다.
이런 결심을 그녀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고, 대학원에 진학해 어려서부터 꿈꿨던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이와 함께 그간 소홀했던 문화 예술적 감각을 되살리고,
꿈꾸던 행복을 찾기 위해 교육기관이나 주변 동호회에 참석했다.
동기부여 강의를 듣던 삼십 대 후반 여성 수강생 분의 이야기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렇다고. 한 동안 나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컥했다.
서로 글썽인 눈물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계면쩍진 않았다. 왜 눈물이 났고, 무엇 때문에 감정이 복받쳤는지 서로 잘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잠을 자고, 생계를 꾸리고, 사랑하는 마음들을 전달하고 나면,
내게 주어질 남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글쓰기란 좋은 도구 하나를 갖게 된 것이 난 무척 기쁘다.
그녀의 그림처럼 화구를 챙길 것까지도 없으니.
살다가 문득 사는 게 재미없다고 느껴지면,
잠시 멈춰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나 해보자.
"과연 난 잘 살고 있는 건가? 이대로 살아도 괜찮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