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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삶조각사 이지원 Dec 03. 2022

앞서기 보다 중간, 편안함에 이르는 비결 1156일차

미라클모닝의 기록

착한 일을 하더라도 소문이 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악한 일을 하게 되더라도 형벌에 가까워서는 안 됩니다. 

무언가를 할 때는 그 중간의 입장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이렇게 한다면 자기 몸을 지키고 일상은 편안히 보내면서 부모를 공양하며 하늘로부터 받은 평생을 무난히 누릴 수 있게 됩니다.

爲善無近名(위선무근명) 爲惡無近刑(위악무근형) 緣督以爲經(연독이위경) 可以保身(가이보신) 可以全生(가이전생) 可以養親(가이양친) 可以盡年(가이진년)

- 장자 내편 〈양생주〉 中에서


저자 김범준은 오십이 되니 몸이 영 안 좋아진다고 말합니다.

맞아요. 저도 그렇더군요. 처음 40이라는 앞자리가 바뀐 나이를 받았을 때와

또 50이란 조금 더 무거운 앞자리 나이를 받았을 때 급격한 차이 남을 느꼈습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몸만 그런 게 아니라 마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장자의 양생주엔 이런 사람들을 위해

특히 쉴 틈 없이 그동안 바삐 살아온 오십 대에게 이제 여백을 고민해 보라고 합니다.


삶의 여백,

그동안엔 미처 보지 못했던 공간,

그동안엔 신경 쓰지 못했던 시간,

그동안에 챙겨 주지 못했던 사람,

생각보다 뒤돌아보니 그런 공간, 시간, 사람이 많았습니다.


무엇을 목표로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전 늘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쪽에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 모인 것이니

아무래도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성공 확률이 높은 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그런 공간에 이리 부대끼고, 저리 부대끼고,

어떨 땐 다른 사람에게 발을 밟히고, 그럼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고,

그러다가 잘못 나도 다른 사람의 발을 밟고, 미안해서 사과하고, 사과해도 욕은 먹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아주 가끔입니다.

멋쩍지만, 예전에 비해 그럴 일이 자주 생기지도 않아요.


그런데, 이번엔 이전과는 다르게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공간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간 말고, 조금 떨어진 공간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경쟁에 좀 덜 민감해지고,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 때문이었나 봐요.

글쎄 너무 경쟁이 격화되는 것 같아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보니

그제야 시야가 트여

그동안엔 안 보이던 공간이, 사람들 제법 모여 있는 새로운 공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이어가 천천히 지나버린 상황들을 곱씹었더니

이번엔 그런 종류가 공간만이 아닌 것도 보였습니다.

시간...,

사람...,


그동안엔 미처 보지 못했고, 신경 쓰지 못했고, 챙겨주지 못한.

그래서 이미 놓쳐 버리고 지나쳐 온.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그 젊은 날 장자를 읽었다고 해도 오늘 이 깨달음은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아직 내가 무르익지 않았으니, 그 풋내 나는 성정으론 무리였겠죠.


그러면서 위선무근명(爲善無近名)이라는 다섯 글자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착한 일을 하되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다."라는 원뜻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반드시 선, 그러니까 옳은 일이라고 명명, 확신하지 말아라."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함부로 옳다, 착하다, 바르다, 맞다, 정확하다 함부로 이름표 붙이지 말란 말이죠.

여백이란 다른 말로 하면, 가능성이니까.

내가 아무리 옳다고 믿어도 누군가에겐 해가 될 수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 말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강한 확신이 들어도 한 번쯤 더 여백을 갖고 되돌아 보란 거죠.

혹시 내 확신에 나만 득을 보는 건 아닌지

내 믿음으로 행하는 일 때문에 심각한 손해를 보는 사람은 없는지

그런 삶의 여백쯤은 갖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강해서 웬만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그 한계를 넘는 바람이 불면, 꺾입니다.

무조건이란 확신이 들어 퇴로를 생각해놓지 않으면, 위기가 닥쳤을 때 빠져나올 길이 없습니다.


나아갈 수 있는 방법,

지금의 자리에서 버틸 수 있는 방법,

편안함에 이르는 방법은

내 눈이 아니라 내 생각이 어디를 보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겠죠.


이젠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 흔들려도 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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