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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 Jan 25. 2024

아직 엄마를 잃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

프롤로그


"우린 바보들인가? 왜 엄마가 죽을 거란 생각을 못했지??"


중환자실에서 엄마의 임종면회를 마치고 우리 삼 남매가 모여 제일 많이 한 말이다. 도대체 왜 엄마가 죽을 거란 생각을 안 했을까? 엄마는 6년 동안 암환자였는데 대체 왜?


아니다. 사실 아주 가끔은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뭐, 사람은 누구나 다 죽으니까. 게다가 엄마는 암환자니까.'

죽음에 대해 그 정도 관념적이고 기본적인 생각밖에 없던 우리는 갑자기 코앞으로 다가온 생생한 죽음 앞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깊고 깊은 바다에 심해어가 살고 있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안다. 하지만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는 길에 눈앞에서 괴물같이 생긴 심해어가 팔딱팔딱 뛰고 있는 걸 마주친다면?

경악을 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 것이다. 나에게 엄마의 죽음이 그랬다.


그러나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굳어버릴 틈도 없이 당장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줄을 지어 서서 나를 채근했다. 장례식장의 크기, 수목장으로 할지 납골당으로 갈지, 부의금을 누가 받을지, 화장터로 갈 버스는 몇 인승을 대절할지, 심지어 손님식사를 육개장으로 할지 황태해장국으로 할지도 지금 당장 결정해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장례식과 삼우제가 끝났다. 그 이후에도 각종 보험과 은행업무, 조의금 배분, 유품 정리, 이사 준비, 엄마의 사업자 정리, 엉망이 된 부녀관계 정리(?) 등 할 일이 태산이었다.


게다가 난 두 아이의 엄마다. 어느 날은 나 홀로 슬픔 속에 푹 잠겨버리길 간절하게 바랐지만 나 없인 먹고 살 줄도 모르는 나약한 인간 두 명이 나를 슬픔 밖으로 잡아끌어 현실에 데려다 놨다.

아이들의 똥을 닦아줘야 하고 밥을 먹여줘야 하고 잠도 재워줘야 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 아이들 덕에 하루에 몇 번쯤은 웃었고 밤이 되면 지쳐 곯아떨어지느라 슬픔과 조금은 멀어질 수 있었다.


<아직 엄마를 잃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라고 거창하게 프롤로그의 제목을 지어 놨지만 나 역시 아직 초보다.

아니, 우리 모두는 많아야 두 번 밖에 겪지 못할 부모의 죽음 앞에 영원히 초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잘 준비하지 못했다.


죽음을 상상하는 그 행위 자체가 죽음을 몰고 오는 복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는 오지 않을 죽음이 내가 재수 없게 자꾸 그런 말을 하고 상상을 하는 바람에 와 버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오로지 엄마만이 답해줄 수 있는 질문들이 나에게 아직 너무 많이 남아있다. 엄마의 장례를 주인공인 엄마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치렀는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아직 부모님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부모님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죽음을 준비하고 나면 더 사랑하게 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절대적이고 뻔한 진리가 현실로 다가와 서로를 끈끈하게 만들어 주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나의 경험을 통해 한 번쯤 내 부모의 장례식을 상상해 본다면 미리 무엇을 준비해야 될지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가볍게 나의 넋두리를 들어주어도 좋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니 불쌍하네.' 해도 좋다.

'난 엄마 아빠가 다 안 계시는데 엄마 한 명 없다고 불쌍한 척하네.' 해도 좋다.


사실 그 내가 이렇게나 엄마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고, 여전히 절절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세상에 외치고 싶다.

엄마가 사랑했지만 너무 일찍 떠나야만 했던 이 세상에 그렇게나마 엄마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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