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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은 Jan 02. 2021

.. 자니?

낯설어서 그래, 아빠.

.. 자니?


나는 누워 있었다. 아빠의 병실 침대는 가장 유리창과 가까운 맨 끝 쪽에 자리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 병원에서의 시간이 익숙해진 덕분였는지 그 날은 엄마에게 오늘은 아빠 옆에서 자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라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분명하게 남은 기억 몇 가지가 이렇게 내 마음에 흔적을 남겼으니, 그 하얗고 딱딱하던 병실 침대와 병원 이름이 다닥다닥 박혀있는 얇고 멋대가리 없는 옷을 입고 한쪽 손에 커다란 주삿바늘을 꽂고 앉아있던 아빠의 모습과 아직 기운을 완전히 차리지도 못했으면서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고 몸을 제법 움직이기 시작한 아빠의 낮은 목소리가 그것이다. 그것들만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참..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어쩜 이리도 제멋대로인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다 기억하게 해 주지도 않으면서 뜬금없는 것들이 또렷하게 마음에 남는다. 지나온 시간들이 무색해져 버릴 정도로.


아빠는 중환자실에서 두어달 때쯤 계시다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였다. 조수석에 앉아 계시던 아빠는 운전하던 분이 앞서 있던 차량을 피하려 본인 쪽으로 운전대를 돌리시면서 몸으로 모든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던 것 같다. 그때 운전하시던 분은 크게 다치진 않으셨지만, 우리 아빠는 운이 좋지 못했다고 했다. 갈비뼈 한쪽이 전부 부러지고, 부러진 뼈가 안의 장기를 손상시킨.. 어려서 자세히는 알아듣질 못했지만 그렇게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으셔야 했고, 엄마는 아빠를 간호하셔야 했기에 나는 그 두어 달 동안 작은 삼촌댁에 맡겨졌었다. 너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엄마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날이면 그게 그렇게 좋아서 엄마의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었었다. 밤마다 쩌렁쩌렁 목이 터져라 기도를 드렸다. 우리 아빠 빨리 낫게 해 주세요 하고. 우리 가족 다시 모여 같이 살게 해 주세요 하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견디기 힘든 밤에는 이불을 꼭 붙들고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했었다. 엄마와 아빠는 "당연히" 내 곁에 있어야 하는 분들이었는데. 한순간에 무너진 당연하던 일상이 그 시절 나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간절한 희망이었던 것 같다. 나의 아이들은 절대로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감정이다.


마침내 아빠를 볼 수 있게 되어 병원에 갔던 첫 날을 기억한다.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아빠에게 미안한 날.

병실 문이 열렸고, 아빠는 코와 양손 등 온몸에 커다란 호스와 주삿바늘을 꽂고 두 눈과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누워 계셨다. 문이 열리자 나를 알아보시고 손가락 끝을 겨우 까닥까닥 움직여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보내셨는데, 나는 주춤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알아온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엉망이어서, 동화책에서나 보던 도깨비만 같았다. 우리 아빠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며 매일 밤 기도를 드리고 그려보던 우리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주춤주춤, 엄마의 손길에 등 떠밀려 겨우겨우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우리 아빠,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하나뿐인 딸내미 무척 보고 싶었을 건데...


다행히 아빠의 상태는 점점 좋아지셨고, 그렇게 그날 밤 나는 아빠의 병실에서 아빠와 함께 잠을 자게 되었다. 아직 갈비뼈가 제대로 붙지 않았으니 아빠 침대로 올라가거나 아빠 곁에서 너무 움직이지 말라는 엄마의 주의를 기억하고, 병실 침대 옆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며 참을 청하는데, 참 잠이 안 와도 너무 안 왔다. 베개느 딱딱했고, 이불은 너무 얇았다. 병실 안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도 왠지 무섭고 오싹해서 소름이 돋았다. 괜히 여기서 잔다고 했나 후회가 막심해져서 다시 삼촌댁에서 잘 때처럼 이불을 꼭 붙들고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잠든 줄 알았던 아빠가 나직하게 나를 부르셨다.


... 자니?


아빠는 이리 올라와 아빠 옆에서 자라고 이불을 들어 보이셨고, 나는 냉큼 그 하얗고 딱딱한 침대로 냉큼 올라가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주삿바늘이 꽂힌 아빠 팔베개를 하고서야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아빠 뼈가 아직 덜 붙었다는, 실수로라도 건들지 않게 조심하라는, 아직 아빠 많이 아프다는, 엄마의 주의를 싹 다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채.



그날 밤은 그렇게 흘렀다.

내가 잠이 든 줄 알고 조용히 내 머리를 쓸어내리시던 아빠의 손길을 기억한다.

삼십 년 가까이 된 오래된 이야기. 벌써.


이제는 희끗희끗, 참 많이 나이 먹은 우리 아빠와 아들 둘의 엄마가 된 나의 우리 둘이서만 아는 그때 그 시간의 이야기. 미국이라는 나라로 너무 멀리 시집을 와 살아버리면서, 가끔씩 엄마 아빠가 그리워져서 홀로 있는 시간에 스윽 눈을 비비며 우는 철없는 나, 이 딸내미의 이야기.



그날 밤 그 낯설고 차갑던 공간에서도 편하게 잠이 들 수 있었던 것은 아빠의 따뜻한 품 안이었기 때문임을 안다. 그 품의 온도가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서, 내 영혼을 데우고 지친 나를 달래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음을 안다.


그때 그리도 간절했던 아빠의 건강과 품이,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간절하고 소중한 것이 놀랍고.


아, 그립다.




결혼식때 잘살라고 말해주던 아빠



아빠. 아빠. 우리 아빠.

사랑하고 사랑하는, 미안하고 보고 싶은 우리 아빠.

내가 미국에 있는 게, 이럴 때 정말 너무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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