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하루의 흡족함 두 근
본업이 있으나 경기침체로 저는 오전 두 시간을 초등학교 도서실에서 병아리 같은 아이들과 다른 행보를 하고 있지요. 후딱 일주일이 지난 것 같습니다. 보람은 흡족하며 저는 사실을 브런치에 올리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간이 가져다준 경험을 또 써보려고요. 제겐 기록이 되지 싶으며 공유를 같이 해봅니다.
도서실에 있는 시간은 동화를 한 권씩 보게 되며 아이들이 건네는 말속에서 그런 말도 쓰는구나를 건지게 됩니다. 순간에 말을 잘 받아치는 게 비즈니스 하는 것 같았어요. 앞말은 스쳤는데 같은 학년의 여아가 순간에 그러네요. “야! 내게서 이렇게 빠르게 사과받아 가네.”
우리가 유년 때는 조부모님이 어려웠기에 무릎 꿇고 밥상에 앉았던 대가족 시대여서 말을 아끼고 살았지요. 또한 학교에 가면 무서운 선생님이 계셨지 싶어요. 생활권과 문화가 크게 바뀌면서 말의 태도가 상당히 변화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서실 이틀째는 5학년 아이가 스스럼없이 다가와서는 “세계 1차 대전 때 협상국과 동맹국 그리고 중립국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미국 같은 나라는 동맹국이면서 바로 전쟁을 일으키잖아요. 저 궁금해서 얼른 여쭤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랑 같이 지피티에 문의했죠. 아이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자 이어서 아이가 한참 빠져있는 ‘유요’ 유튜브 영상을 제게 보여주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아 줬어요. 음향과 노래 그림까지 이 유튜버가 올렸는데 말이 엄청 빨라서 못 알아듣는 겁니다. 정신이 없어 하자 아이는 똑같은 영상을 삼사십 번 연거푸 들으면 내용을 알게 된다고 했어요. 저는 세계사에 대해 최경식 작가님 글을 소개했더니 유튜브로 노래 듣는 게 익숙하다고 했지요.
외투를 걸치고 퇴근하기 전 실무사 선생님과 담소를 잠시 나눴습니다. 성함도 특이하셨는데 댁은 우기 작가님이 살았었으며 제 사무실과 아주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계셨더라고요.
1학년 학부모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어요. 머리를 예쁘게 묶어 오고 차가운 여아예요. 그래도 아기이니 제게 잠바 지퍼도 잠가달라고 하죠. 횡단보도가 있어서 학교와는 20분 거리인 저희 집 건너편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 오빠가 도서실 입구까지 매일 동행해서 와줘요. 하루는 교실로 바로 갔는지 큰 창문 앞으로도 지나는 걸 못 봤지요.
두 아이의 엄마인 학부모는 S가 도서실에 오지 않았으면 집으로 연락을 바로 줬어야지 아이가 안 온 것도 모르고 있냐며 언짢다며 핀잔을 주는 통보를 하고 통화를 끊었답니다. 선생님이 출석부에 별표와 밑줄을 그으셨지요. 각별하게 신경 쓰자고 하셨어요. 유리창에 아이 모습이 비치면 얼른 데리고 들어오자고 했어요. 다음날 수업 시간을 마친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는 안도를 가졌습니다.
다음날은 S한테 물어봤어요. “처음 학교에 온 날 강당 갔던 날 선생님이 무얼 주시던?” 했더니 “아무것도 안 받았는데요. 아참 J는 받았어요. J가 받은 거랑 똑같은 거 저도 받았어요.” 대답이 신기했답니다. 교육청의 방침이 책날개 입학식으로 명명하고는 책에 관한 선물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더랬죠. 무언가는 받았나 봅니다.
그리고 제가 놀란 것이 있어요. 우리 동네도 다문화 가정이 더러 있다는 것과 영세민이 많으며 따라서 한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가 전체 1학년 중 4분의 1은 된다는 거였어요.
선생님들의 노고와 고충이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울던 아이는 오늘도 울었다고 지나치다가 엄마 되는 분이 그러셨죠. 화장실에선 남아가 다문화 가정 아이 같았는데 두 분의 여성분이 무얼 지도하시더라고요. 늦잠 잤다며 5학년 남아가 1교시를 빼먹은 채 실내화를 갈아신어요.
제 아이들도 이 학교에서 빛나는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바뀌지 않은 건 그때 어머니들이 종이접기로 만든 커다란 액자가 아직도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