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a fantasy, 당신이 한 번쯤 상상해보았던 그 이야기
누군가 우리에게
판타지 영화를 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시 현실을 살아낼 힘을 얻기 위해.'
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이자, 저명한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에게 누군가 물었다고 한
다. 당신은 자녀를 낳아 기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동화를 썼느냐고. 그의 대답은 이랬다. 누
구나 한 때는 어린 아이였다고.
그래픽 노블로 유명한 랜섬 릭스의 <미스 페레그린> 시리즈가 팀 버튼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
졌다. 이 영화는 아동용일까, 성인용일까. C. S. 루이스의 말대로 누구나 한 때는 어린 아이였
고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 팬은 어른들의 마음 한 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기에, 아마도
성인용과 아동용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모두를 아우르는 영화로 보면 될 것이다. (사실 아이
들이 보기엔 기괴하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꽤 있어서 주 대상은 어른이라고 봐도 무
방하다.)
이 영화의 미덕은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에이사 버터필드가 연기하는 소년 제이크의
환상적인 모험담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외로운 소년 제이크는 할아버지의 의문스런 죽
음을 목격하고 나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신비한 곳으로 초대된다. 그 곳은 미스 페레그
린 송골매 으로 불리는 새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보호하는 그녀의 집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이크가 만나는 아이들의 능력은 놀랍다. 누구는 공중에 떠오르고, 공기를 자유자재
로 다루고, 또 누구는 놀랄 만큼 힘이 센가 하면, 모습이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도 있고, 벌을
몸 안에 넣고 다니는 아이도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여기서 발견하게 되는 제이크의 특별
한 능력이다. 페레그린의 집에서 제이크는 더 이상 초라한 왕따 소년이 아닌 것이다.
영화는 한 소년의 모험담과 성장담이 곁들어진 판타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단순한 오
락 영화가 아니다. 아이들이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자기 몫을 해내는 이야기이고, 반
전(反戰)의 목소리도 뚜렷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과 이를 스
크린에 아름답게 표현해낸 팀 버튼의 연출력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소년 제이크가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적들을 물리치고 나자
신비한 나라에서 자기들끼리만 산다는 것이다. 제이크가 왕따 당하던 현실로 다시 들어와 당
당하게 살 수는 없을까? 우리가 판타지 영화를 보는 이유도 현실을 재구성하고, 다시 현실을
살아낼 힘을 얻는 것이면 좋겠다. 바라건대 그것이 바로 우리가 판타지 영화를 보는 이유가
되었으면 한다.
신비한 능력의 아이들 속에서도 제이크의 능력은 독보적인데, 바로 무시무시한 괴물의 모습
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이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전쟁을 피
해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 그만큼 작가의 세계관은 비관적이다. 이 세상에는 희망이라고는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 속에 숨은 이 지독
한 염세주의라니. 신비하고도 슬픈 이 판타지의 다음 시리즈에서 제이크는 다시 세상으로 돌
아올 수 있을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사진 제공 Chernin Entertainment, Tim Burton Productions, TSG Entertai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