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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룩스 Mar 02. 2020

대체 불가한 온도, 36.5℃ - 영화<Her>

영화<Her>, 힘께 체온을 나눌 수 있기에 대체 불가능한 존재에 대하여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절친한 친구에게서 뜻밖의 모습을 발견하고 설렘을 느끼게 되는가 하면, 너무도 반대라서 결코 나와는 어울리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이와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며 어느새 마음을 나누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사랑은 그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서, 얼마큼의 깊이로, 무슨 이유로 인한 것인지 등 모든 게 불투명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찾아온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외로운 순간, 나를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가 있다.


영화<Her> 스틸컷

2025년 로스앤젤레스, 주인공 ‘테오도르’는 손편지를 대필해주는 작가이다. 타인을 위해 절절한 진심과 사랑을 꾸며주던 그는, 막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멀어진 아내 ‘캐서린’과 이혼을 준비하며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좀처럼 마음을 다잡지 못하던 그는 어느 날, 이야기를 들어주고 친구처럼 이해해 준다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광고를 보고 구매하게 된다. 책을 뒤적여 0.02초 만에 ‘사만다’라는 이름이 주어진 인공지능은 테오도르와 딱 맞는 가치관과 취향으로 단숨에 그를 사로잡는다. 속 깊은 대화와 마음을 주고받던 테오도르는 어느덧 사만다를 프로그램이나 기계가 아닌 동등한 존재에서 나아가 연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영화 <Her>  스틸컷인공지능 기술이 서서히 일상에 파고드는 가운데 ‘기계가 우리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도 함께 떠오르고 있다. 2016년에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세계적인 바둑기사와의 대국에서 승리하고, 가정용 인공지능 스피커가 출시돼 “TV 좀 틀어줘”라고 명령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 뒤의 미래를 그린 HER에서는 오로지 사람과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관계 형성까지 그려낸다.      


영화 <Her>  스틸컷

그러나 그녀가 자신만을 위한 연인이라 생각하던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동시에 600명이 넘는 사람과 대화하는 중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자 큰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사만다와의 대화가 오로지 자신에게 맞추도록 설정된 하나의 프로그램임을 깨닫게 되면서 그간 함께 나누었던 감정이 허상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한다. 마침내 사만다가 부재한 순간, 테오도르의 곁에 있어주는 것은 친구 에이미이다. ‘과연 컴퓨터와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중 일어나게 되는 의문에 에이미가 대신 답변한다. 함께 체온을 나눌 수 있기에 대체 불가능한 존재, 사람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다고.    


영화<Her> 스틸컷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수상작인 HER는 철학적인 내용과 심금을 울리는 주인공들의 대사로 오랜 시간 회자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테오도르 역 호아킨 피닉스의 감각적인 스타일링과 파스텔 빛을 머금은 영상미로 보는 재미를 준다. 또한 인공지능 사만다 역의 스칼렛 요한슨이 설렘과 슬픔, 열렬한 마음을 모두 담아낸 목소리만으로 제8회 로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자배우상을 받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나와 딱 들어맞는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결국 나와 온전히 같은 사람은 없기에, 사랑하는 이와 끊임없이 맞춰가며 서로를 위한 모습으로 마모되어간다. 다시 찾아온 사만다는 우리에게 진정한 이해와 사랑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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