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사랑하기에 일을 하지만, 일 때문에 사랑하지 못하는 역설에 관하여
관객이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중에 화려한 액션과 영상미에 빠져들어 현실을 잊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으로 우리 삶을 돌아볼 때가 있다. 어느 택배기사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후자에 가깝다. 현실고발이라기엔 따뜻하고, 가족 이야기라기엔 너무도 냉소적인 이 영화는 예상치 못한 순간 엔딩 크레딧이 덮쳐온다. 캄캄해지고 고요해진 영화관을 흐느낌으로 채우는 이 영화는 왜 사람들을 울게 만드는 걸까.
영화의 주인공은 4명의 가족이다. 아버지 리키는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프리랜서 택배 기사 일에 뛰어든 사람이다. 그러나 말만 개인 사업자였지, 위치 추적 무전기로 감시당하고, 휴가도 함부로 못 내는 노동자이다. 아들의 퇴학 문제로 학교를 찾아가야 할 때도, 길에서 강도에게 당해 뼈가 부러졌을 때도 대체 인력을 구하지 않으면 쉴 수가 없고, 쉬면 한 달 급여보다 더 큰 벌금을 물어야 한다. 어머니 애비는 마찬가지로 프리랜서 시간제 간병인이다. 역시 교통비, 식비 모두 본인이 부담하며,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초과하는 업무량을 하면서 수당도 받지 못한다. 가족의 안정과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 아들 셉은 사춘기 고등학생인데,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는 가난과 사회 현실을 인지하고, 학교를 나가지 않고 거리에서 그라피티를 하며 나름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 딸 리사는 아주 어린 초등학생이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철든 아이다.
네 배우는 이번 영화가 모두 첫 출연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앞으로 영화에서 보일 일이 없을 일반인들이 나온 것이다. 켄 로치 감독은 늘 연기력과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했던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아 캐스팅하는데, 리키를 연기한 배우의 경우에는 실제로 20년간 보일러 수리공을 하며 유사한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다. 이들 연기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촬영 현장에서 아주 약간의 변수만 생겼어도 연기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은, 생생한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이입해 영화 속에서 실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에 다름없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도 캐릭터에 깊게 몰입하고 공감하게 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리키가 돈을 벌려고 택배 기사에 뛰어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 간 소통이 줄어들고, 신뢰가 무너지고, 갈등하게 되는 시간의 흐름을 그린다. 그 흐름 속에서 네 인물의 생각과 태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당연한 일상마저 일로 인해 묵살되는 상황에 처하자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갈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싸우고, 피곤하고, 힘든데도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을 하지만, 일 때문에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 이 역설 속에서 관객들이 눈물을 보인 것은, 아마도 모두가 비슷한 인생의 역설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리키가 차를 몰고 나가면서 시작된 이 영화는 엔딩에서도 차를 몰고나가는 리키의 모습으로 끝난다. 그 사이에는 영화 속 리키의 심정에도, 영화를 감상하는 우리의 마음에도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영화의 제목은 그런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식스틴 필름스, 영국 영화 협회, 와이 낫 프로덕션스, 와일드 번치, BBC 필름스, 엔터테인먼트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