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 of Querencia
투우 경기에서 소가 결전을 앞두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잠시 쉬는 곳을 케렌시아(Querencia)라고 한다. 케렌시아는 경기장 내 규칙으로 정해진 장소가 아니라 경기 중 소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곳을 가리킨다. 투우사는 케렌시아 안에 있는 소를 공격해서는 안 되며, 소는 그 안에서 잠시나마 단 휴식을 얻을 수 있다. 소가 케렌시아 안에서 숨을 고르고 다음 전투를 준비하듯 우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케렌시아라는 단어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나만의 휴식처’를 찾는 현상으로 불리고 있다.
코로나19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코로나와 공존해야하는 이때, 나만의 케렌시아가 가진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어 업무와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사람들은 분리된 휴식에 대한 필요성을 더 간절히 느끼고 있다. 시공간의 분리를 위해 카페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공유오피스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집은 오롯이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은 심리가 담긴 것이다.
한편 현대인들은 집을 떠났을 때 비로소 진정한 휴식을 경험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과 장거리 여행이 불가능해졌지만 사람들은 국내 여행과 비대면 여행이라는 대안으로 자신만의 쉼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 국내 관광 트렌드 키워드 중에 ‘Encourage, 위로’와 ‘Wherever, 어디든지 관광지’라는 키워드가 있다. 나만의 휴식처를 찾는 이들의 움직임이 모여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블루에 대비해 ‘자신을 위로’하는 관점에서 장소의 키워드가 급증했다. 유튜브 콘텐츠 키워드 분석 결과 해외 장소와 관련된 정보 키워드 점유율은 전년 대비 12% 감소했지만, 국내 장소 소개 키워드 점유율은 6% 증가하였다.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해 가까운 곳에서 자신만의 힐링 시간을 누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또한 비대면, 차박(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차에서 숙박하는 행위) 등 위생과 안전을 고려하며 즐길 수 있는 일상 속의 케렌시아 키워드가 떠오르고 있다.
숙박이 필수인 장기 여행보다 카페 방문이나 쇼핑을 목적으로 가는 단기 이동과 나만의 케렌시아가 주목받고 있다. 통신 데이터의 관광 유입인구 데이터를 활용해 지역 간 이동을 분석한 결과 거리상 가까운 광역시와 도로의 이동이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은 광역시와 인근 지역을 하나의 관광권역으로 만들었다. 원거리 이동이 위축되고 근거리 이동이 강화되며 수도권으로 집중되었던 이동이 권역 간 이동을 통해 전국적으로 분산되었다. 동일한 흐름에서 유튜브 데이터 분석 결과 수도권이나 잘 알려진 장소보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섬·소도시 등 색다른 장소에 대한 비중이 증가하였다. 다양한 국내 장소들이 부각되며 붐비지 않는 소소한 공간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들으면 미소가 지어지는 노래,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산책, 보글보글 끓는 엄마의 된장국, 마음 한 켠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있는 곳 어디나 케렌시아가 될 수 있다. 투우광이었던 헤밍웨이는 “케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치열한 전투 속 한숨 돌릴 수 있는 그 순간이, 내일을 이기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글 newl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