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 고통조차 그리움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까.

by 백건


언젠가 이 고통조차 그리움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까.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에서 난파된 병사들 앞에 선 아이네이아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Forsan et haec olim meminisse iuvabit.”

언젠가 이 고난조차, 너를 미소 짓게 하리라.


이 오래된 라틴어 문장 속에는,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마음을 꿰뚫는 지혜가 숨어 있다. 사람은 고통을 미워하면서도, 결국 그 고통이 만들어낸 자신을 더 단단히 사랑하게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시인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출렁이는 삶의 다리를 건너며 우리는 수없이 비틀거린다. 늦은 밤 쏟아지는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불안 앞에서, 혹은 상실의 그림자 아래에서, 우리는 늘 조금씩 무너진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난 뒤에 문득 뒤돌아보면, 그토록 힘들던 순간들이 희미한 온기를 띠며 떠오를 때가 있다. 마치 상처의 결까지 기억하는 낡은 사진을 들여다보듯 말이다. 고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언젠가 조용히 의미라는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사랑도 그 법칙을 피해 가지 않는다. 사랑의 끝에는 보통 상실이 먼저 찾아오지만,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장 어두웠던 순간들—서로를 몰라서 다투던 날, 마음이 닫혀버려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던 밤—조차 작고 애틋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때는 왜 그토록 서운했을까, 왜 그 말 한마디가 온 마음을 뒤흔들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 시절에는 그것마저 전부였던 우리였다.


스토아의 철학자들은 우리가 겪는 사건들에는 선도 악도 없다고 말한다. 가치란 결국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되돌아보느냐에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에서의 상처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헤어짐의 순간에는 세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듯하지만, 먼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부서진 파편들 사이에서 문득 빤짝이는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집착을 내려놓는 법, 스스로를 지키는 법, 그리고 사랑했던 마음이 사라진 뒤에도 홀로 설 수 있는 법 같은 것들이 나의 해변에 조개껍질처럼 흩뿌려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고통은 우리가 원하는 순간에 물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성장했을 때, 그것은 조용히 제 모습을 바꾸어 과거의 나를 이해시키는 스승이 된다. 사랑의 기억 또한 그렇다. 지키지 못한 약속들, 미워했던 밤들까지 결국엔 “그럼에도 사랑했다”는 증언으로 남는다. 언젠가는 상처의 결정체들이 투명해져, 그 안에서 그 시절의 너와 내가 또렷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 고통의 시간 속을 지나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지금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이 순간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언젠가 이 순간이 너의 삶을 구성하는 한 조각이 되어 따뜻한 빛을 머금을 것이다.


Forsan et haec olim meminisse iuvabit.

언젠가 이 고난조차, 너를 미소 짓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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