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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뉴븨 Newnewv Nov 19. 2024

'다정(多情)' 하면 생각나는 처음 사람

<문학 고을> 2024 신인 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작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데 그 제목은 끌린다. 나는 유독 '다정한' 느낌의 단어들에 끌리는데 그것은 내 기억 속, 나에게 유독 다정했던 '첫 사람'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처음, '다정하다'라는 단어가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해 준 사람은 바로 우리 '아빠'다. 나이가 많아지면 다들 '아버지'라고 호칭이 바뀌는데, 내게는 여전히 '아빠'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시절, 엄마는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병으로 여러 한의원과 병원들을 다니셨었다. 병명을 뾰족이 알 수가 없으니 이 약도 써보고, 저 약도 써보지만, 특별히 대단한 효과를 볼 수 없었고 엄마를 무척 아끼셨던 고모할머니는 그저 어떤 병인지라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속상해하시곤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서울에 있었고, 우리 집은 경기도에 있었다. 아빠가 경기도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면서, 엄마를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자주 데리고 다니셔야 했기 때문에, 어린 나를 돌봐 줄 다른 손길이 필요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나는 서울 외할머니 댁에서 외할머니, 이모, 외삼촌과 함께 살았고, 평일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주말이면 지하철로 2시간여 거리인 우리 집으로 신이 나서 가곤 했다. 나는 10살의 나이에도 버스를 타고 청량리까지 나와서 다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고 경기도에 있는 집으로 가곤 했다. 노란색 직사각형 모양의, 지하철 1호선 패스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지하철역이 집까지 몇 정거장 남았는지를 세면서, 특히 용산역 부근에 오면 한강 다리를 건넜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더욱 흥분이 되곤 했다. 지하철이 딱 거기서 컴컴한 지하도를 빠져나오고, 열차의 철커덩철커덩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고, 또 집이 가까워지는 신호이기 때문이었다.   

방학 때면 더욱 좋았다. 외가에서 아예 내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우리 집으로 가는 거였다. 한 달이나 집에서 아빠랑 엄마랑 동생이랑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 아니어서 종종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방학 때 집엘 가면 아빠를 보는 것이 그냥 좋았다. 아빠가 동네 할아버지와 바둑이나 장기를 두시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도 좋았고, 엄마를 위해 소금 간을 전혀 하지 않은 김치며 반찬이며 만들어 주실 때, 괜히 내 반찬 말고 아빠가 만든 엄마 반찬을 뺏어 맛보던 기억이 나는데 참 좋았다. 또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료수가 진열된 쇼케이스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한 개만, 한 개만'하며 아빠를 졸라서 냉장고에서 쿨피스, 사이다 등을 꺼낼 때의 즐거움.

 어느 날은 아빠가 지인과 사냥을 나가셨는데, '참새' 다섯 마리를 잡아오신 거였다! 동생이랑 나는 아빠의 사냥 취미에 충격을 받고는, 다섯 마리 참새를 앞에 놓고 엉엉 울며 애도를 했던 기억이 난다. 동물을 사랑하는 나와 동생에겐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지금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 시절 어린 나에게 있어 '우리 집'이란, 어린이날 부모님 손 붙잡고 호기심 가득해서 놀러 가는 '어린이 대공원'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델 놀러 가면 왠지 집에 가기 싫지 않은가.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다정함은 방학 때 매우 증폭! 되었다. 방학 때면 아빠가 항상 나와 같이 해주시는 게 있었다. 바로 '방학 숙제'. <탐구 생활>의 곤충 채집(사마귀 알을 채집한 적이 있다!)이나, 만들기 숙제 같은 것을 같이 해주시곤 했는데, 우리는 근 3년은 똑같은 주제의 만들기를 했다. 제목은 '우리 가족', 재료는 달걀. 사인펜으로 달걀에 얼굴을 그려 넣는 아주 단순한 만들기였는데, 우리 가족은 넷이 전부지만, 달걀로 만드는 '우리 가족'은 때로 '계란 한 판'이 되곤 했다.

 2학년 땐 사인펜으로 얼굴만 그렸다. 3학년 때는 달걀을 삶았고, 다양한 색상의 털실로 달걀 가족의 헤어도 완성했다. 해가 바뀌면서 달걀 가족은 업그레이드되었다. 마이클 잭슨 작사, 작곡, 퀸시 존스가 프로듀서한 'We are the world'에서 받은 영감을, 아빠와 나는 '달걀 가족'에 적용하곤 했다. 아빠는 함께 '달걀 가족'을 완성하고는 꼭 유리 가게에다 유리 상자를 주문하곤 하셨다. 그리고 두꺼운 종이로 층층을 만들어 소중히 달걀 가족들을 유리 상자에 넣곤 했다.

 그렇게 만들기 숙제를 해서 학교엘 가져가면 선생님도 애들도 '와!' 탄성을 했고, 재미있어하면서 달걀 가족들의 각기 다른 개성을 얘기 나누곤 했다. 만들기 은상, 만들기 금상.. 상을 탈 때면 뿌듯하긴 했지만, 아빠랑 재미있게 방학 숙제를 같이 한 것이 어린 내게는 더 큰 보상이 되었다.




 인생에 ‘다정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있다는 건 매우 소중하고도 중요한 가치란 생각이 든다. 내게 다정했던 아빠에 대한 기억 때문에 나는, 내 삶 가운데 만나게 되는 사람, 사람에게 대부분 다정함을 느낀다. 아무리 세상이 팍팍하고 살기 힘들어도, 희미해지지 않고 여전한, '다정함에 대한 기억'이, 온갖 세파의 부정적 기운을 능히 물리치는 믿음이 되어 내게 단단히 뿌리박혀 있는가 보다.

 이제 나는 아빠의 나이보다 더 나이가 많은 어른이 되었고, 내게도 소중한 이들이 더 많이 생겼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나의 ‘소중이들’에게도 언제고 여전한, '다정함'으로 추억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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