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희망 찬 2학기
정말 대학교 4학년 2학기가 꿈 많고 희망차고 보람차냐고? 하하.
길을 잃은 4학년. 우울한 2학기. 그리고 매일 유예할지 졸업할지 연필을 굴리던, 나는 그런 2학기를 보냈다.
상황설명 1/
[문과생의 스마트빌딩 만들기]를 끝내고 한국을 돌아왔을 때는 3학년 1학기를 마친 시기였다. 3학년 2학기 그 시기를 고스란히 미국 캡스톤 프로젝트에 보낸 나에게 2개 상황이 존재했다. 하나는 역학기라는 것. 그래서 코스모스 졸업(여름 졸업을 말한다)이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전공인 관광분야가 아니라 복수전공으로 시작한 '융합소프트웨어' 즉, ICT분야로 가야겠다는 결심이었다. 프로젝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이 디자인 업무가 항상 즐겁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내 첫 (혹은 평생) 직업의 근본으로 삼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설명 2/
2018년 1월부터 12월. 그 일 년 동안은 해외여행 한 번 없이 한국에 붙어있는 시간이었다. 돈은 벌어야겠고 장기적인 알바는 싫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 있는 그런 알바를 위주로 찾아보았다. 제주공공도서관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초등학교 체험부스 및 수련회 아르바이트, 제주형 자유학기제 대학생 멘토를 통해 제주관광과 초, 중학생 진로 상담을 했고 이 경험을 토대로 제주국제관악제 청소년 기자단 대학생 멘토 아르바이트까지 이어 할 수 있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거 좋은데 이왕이면 IT분야와 관련된 알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교수님 소개로 사이버 공격 방어대회 서포터즈와 JDC가 주관한 제주형 코딩 교육캠프 보조강사 등 관련된 알바를 접했다. 처음 알바를 시작할 때는 돈이 알바 업무보다 먼저였다.
뭐? 이틀에 20만원에 먹여주고 재워주는 알바라고? 할래
뭐? 3시간만 해도 10만원이라고? 할래
가성비 최고인 알바들만 하다가 IT 관련 알바를 시작하면서 알바가 아닌 조금 더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알바를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마주친 기업이 있었는데 그건 제주ICT연구원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이름을 구체적인 이름을 대신해 바꿨다.)
상황설명 3/
막 학기를 앞둔 겨울방학. 내게는 졸업까지 6학점이 남아있었다. 6학점 전부를 막 학기 때 들어도 됐지만 현장실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겨울방학 8주 동안 실습을 하면 전공 3학점을 이수할 수 있었다. 현장실습 비용이 학교에서도 지급받을 수 있지만 기업의 재량에 따라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현장 실습할 곳으로 신청한 곳은 IT 관련 알바를 할 때마다 마주쳤던 제주ICT연구원이었다.
일하면서 학점을 줘? 학교에서도 주고 회사에서도 지원금을 준다고? 아니 심지어 내가 잘 아는 회사잖아? 코딩을 조금 할 줄 알아야 함.이라는 지원자격에 조금 망설였지만 지원을 했고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이 끝난 날,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알바.. 도 아니고 인턴도... 애매하고 현장실습생...이라는 말이 있나? 암튼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대학교보다 더 멀리 있다는, 제주첨단산업단지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말이다.
코딩을 대충 배웠고 대충 읽을 줄만 알던 상태에서 현장실습 월급과 전공학점 3학점을 두고 나는 시작했다.
상홤설명 4/
일을 너무 잘해서 그런 걸까 코딩을 읽을 줄 아는 디자이너인 척하는 인력이라 그런 걸까. 제주ICT연구원 대표님은 학교를 다녀야 하는 3학점(하루에 3시간 연강 수업이 아니라 화요일 2시간 수요일 1시간 수업)을 배려해주셔서 주 3회 출근하는 알바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지만 알직원(알바+직원)이 되었다. 내 노동력이 이렇게 비싼 값에 받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감사한 시간이었고 제주도 내 교육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공공기관과의 협력은 어떻게 하는지, 하나의 행사를 위해 (특히) 디자인은 어떻게 준비해야 되고 예산은 어떤 부분으로 짜야하는지 등 IT 뿐만 아니라 많은 일들을 배울 수 있었다.
상황설명 5/
학교 3학점과 주 3일 근무는 내게 몸은 여유롭지 않지만 정신은 여유롭게 했다. 계속 바쁘게 돌아다니며 뭘 하던 생활과 성격에서 일정한 스케줄이 생기자 적응하기 무섭게 다음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다. 역시 4학년 2학기. 뭘 해도 걱정이었다. 무조건 유예하자. 졸업은 절대 아니야. 사회 나가기 무섭게 나는 학교, 학생이라는 울타리에서 버려진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다음은 뭘 하지? 누가 날 뽑아줄까? 내가 가진 능력이 있나. 내가 가진 경험이 독특하고 나만의 것이고,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만큼 회사 인사팀에서도 멋지다고 생각해줄까? 이 걱정은 모든 하루의 시작이었고 모든 생각의 시작이었다. 닥치는 대로 그냥 넣어봤다. 진짜 그냥. 자소서를 쓰면서 '나는 진짜 한 게 없구나'싶었고 '나는 정말 글솜씨가 없구나' 싶어 한 달은 내내 울면서 자존감 회복에 시간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대학교에서 해외 인턴 및 취업 설명회에 참가하게 됐다.
상황설명 6/
우리 부모님 이야기를 간략히 하자면, 두 분 다 언어를 전공하셨지만 실무는 교육과 IT, 금형과 금융을 하셨다. 어릴 때부터 들은 이야기가 '한 가지만 잘해서는 안된다'와 '직업을 하나만 가질 생각 마라'였다. 그 가르침을 받아 나는 복수전공을 했고 다양한 길을 생각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 가는 해외인턴(잘하면 취업이 될 수도 있는)을 내 발로 찾아가 알아보고 온 것도 그 가르침 덕이었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 온 이후로 제주에 살든, 서울에 살든, 해외에 살든 내게 큰 상관이 없어졌다. 미국? 좋지. IT 배울 수 있을까? 기회의 땅! 뭐 이런 생각의 흐름은 미국을 또 생각하게 했지만 엄마의 너무나도 적극적인 권유와 경제적, 심리적 도움 덕에 미국을 꿈꾸게 되었다. 그게 2019년 4월이었다.
그래, 그렇게 된거다. 상황 6개나 설명해야 미국을 가는 이유가, 흐름이 완성이 된다.
그런데 말이다.
가고싶다고, 꿈꾼다고 다 되는가? 하하하하하하.
2019년 5월부터 8월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