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나 Oct 12. 2019

꿈 많은 4학년

그리고 희망 찬 2학기

정말 대학교 4학년 2학기가 꿈 많고 희망차고 보람차냐고? 하하.

길을 잃은 4학년. 우울한 2학기. 그리고 매일 유예할지 졸업할지 연필을 굴리던, 나는 그런 2학기를 보냈다.


상황설명 1/

[문과생의 스마트빌딩 만들기]를 끝내고 한국을 돌아왔을 때는 3학년 1학기를 마친 시기였다. 3학년 2학기 그 시기를 고스란히 미국 캡스톤 프로젝트에 보낸 나에게 2개 상황이 존재했다. 하나는 역학기라는 것. 그래서 코스모스 졸업(여름 졸업을 말한다)이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전공인 관광분야가 아니라 복수전공으로 시작한 '융합소프트웨어' 즉, ICT분야로 가야겠다는 결심이었다. 프로젝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이 디자인 업무가 항상 즐겁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내 첫 (혹은 평생) 직업의 근본으로 삼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설명 2/ 

2018년 1월부터 12월. 그 일 년 동안은 해외여행 한 번 없이 한국에 붙어있는 시간이었다. 돈은 벌어야겠고 장기적인 알바는 싫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 있는 그런 알바를 위주로 찾아보았다. 제주공공도서관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초등학교 체험부스 및 수련회 아르바이트, 제주형 자유학기제 대학생 멘토를 통해 제주관광과 초, 중학생 진로 상담을 했고 이 경험을 토대로 제주국제관악제 청소년 기자단 대학생 멘토 아르바이트까지 이어 할 수 있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거 좋은데 이왕이면 IT분야와 관련된 알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교수님 소개로 사이버 공격 방어대회 서포터즈와 JDC가 주관한 제주형 코딩 교육캠프 보조강사 등 관련된 알바를 접했다. 처음 알바를 시작할 때는 이 알바 업무보다 먼저였다.

뭐? 이틀에 20만원에 먹여주고 재워주는 알바라고? 할래

뭐? 3시간만 해도 10만원이라고? 할래

가성비 최고인 알바들만 하다가 IT 관련 알바를 시작하면서 알바가 아닌 조금 더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알바를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마주친 기업이 있었는데 그건 제주ICT연구원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이름을 구체적인 이름을 대신해 바꿨다.)


상황설명 3/

막 학기를 앞둔 겨울방학. 내게는 졸업까지 6학점이 남아있었다. 6학점 전부를 막 학기 때 들어도 됐지만 현장실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겨울방학 8주 동안 실습을 하면 전공 3학점을 이수할 수 있었다. 현장실습 비용이 학교에서도 지급받을 수 있지만 기업의 재량에 따라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현장 실습할 곳으로 신청한 곳은 IT 관련 알바를 할 때마다 마주쳤던 제주ICT연구원이었다.

일하면서 학점을 줘? 학교에서도 주고 회사에서도 지원금을 준다고? 아니 심지어 내가 잘 아는 회사잖아? 코딩을 조금 할 줄 알아야 함.이라는 지원자격에 조금 망설였지만 지원을 했고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이 끝난 날,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알바.. 도 아니고 인턴도... 애매하고 현장실습생...이라는 말이 있나? 암튼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대학교보다 더 멀리 있다는, 제주첨단산업단지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말이다.

코딩을 대충 배웠고 대충 읽을 줄만 알던 상태에서 현장실습 월급과 전공학점 3학점을 두고 나는 시작했다.


상홤설명 4/

일을 너무 잘해서 그런 걸까 코딩을 읽을 줄 아는 디자이너인 척하는 인력이라 그런 걸까. 제주ICT연구원 대표님은 학교를 다녀야 하는 3학점(하루에 3시간 연강 수업이 아니라 화요일 2시간 수요일 1시간 수업)을 배려해주셔서 주 3회 출근하는 알바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지만 알직원(알바+직원)이 되었다. 내 노동력이 이렇게 비싼 값에 받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감사한 시간이었고 제주도 내 교육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공공기관과의 협력은 어떻게 하는지, 하나의 행사를 위해 (특히) 디자인은 어떻게 준비해야 되고 예산은 어떤 부분으로 짜야하는지 등 IT 뿐만 아니라 많은 일들을 배울 수 있었다.


상황설명 5/

학교 3학점과 주 3일 근무는 내게 몸은 여유롭지 않지만 정신은 여유롭게 했다. 계속 바쁘게 돌아다니며 뭘 하던 생활과 성격에서 일정한 스케줄이 생기자 적응하기 무섭게 다음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다. 역시 4학년 2학기. 뭘 해도 걱정이었다. 무조건 유예하자. 졸업은 절대 아니야. 사회 나가기 무섭게 나는 학교, 학생이라는 울타리에서 버려진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다음은 뭘 하지? 누가 날 뽑아줄까? 내가 가진 능력이 있나. 내가 가진 경험이 독특하고 나만의 것이고,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만큼 회사 인사팀에서도 멋지다고 생각해줄까? 이 걱정은 모든 하루의 시작이었고 모든 생각의 시작이었다. 닥치는 대로 그냥 넣어봤다. 진짜 그냥. 자소서를 쓰면서 '나는 진짜 한 게 없구나'싶었고 '나는 정말 글솜씨가 없구나' 싶어 한 달은 내내 울면서 자존감 회복에 시간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대학교에서 해외 인턴 및 취업 설명회에 참가하게 됐다.


상황설명 6/

우리 부모님 이야기를 간략히 하자면, 두 분 다 언어를 전공하셨지만 실무는 교육과 IT, 금형과 금융을 하셨다. 어릴 때부터 들은 이야기가 '한 가지만 잘해서는 안된다''직업을 하나만 가질 생각 마라'였다. 그 가르침을 받아 나는 복수전공을 했고 다양한 길을 생각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 가는 해외인턴(잘하면 취업이 될 수도 있는)을 내 발로 찾아가 알아보고 온 것도 그 가르침 덕이었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 온 이후로 제주에 살든, 서울에 살든, 해외에 살든 내게 큰 상관이 없어졌다. 미국? 좋지. IT 배울 수 있을까? 기회의 땅! 뭐 이런 생각의 흐름은 미국을 또 생각하게 했지만 엄마의 너무나도 적극적인 권유와 경제적, 심리적 도움 덕에 미국을 꿈꾸게 되었다. 그게 2019년 4월이었다.


아유 그래 또 가보는 거지 뭐!

그래, 그렇게 된거다. 상황 6개나 설명해야 미국을 가는 이유가, 흐름이 완성이 된다.

그런데 말이다.

가고싶다고, 꿈꾼다고 다 되는가? 하하하하하하.

2019년 5월부터 8월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미국은 세 번째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