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꼰대짓과 오지랖에 대해서
꼰대는 말이야
유행처럼 시작된 꼰대라는 단어는 대부분 직장생활 내의 꼰대를 말한다. 공감하지 않고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과거의 영광에 취해 남에게 말을 냅다 박아대는 사람. 내가 생각한 꼰대이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꼰대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 미국 인턴 할 때 혹시 그런 분류의 사람들이 많은 회사, 팀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조금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우리 회사는 다행히 연령대가 나랑 비슷해서 어리기도 했고 외국인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직장상사들이 무던히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셨다. 가령 예를 들어 데스크에 '꼰대 방지 5 계명'을 붙여놓는다든가 말이다.
꼰대와 함께 오는 '나 때는 말이야' 'latte is horse' 등은 미국인 선배, 상사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 "When I was your age..."로 시작하곤 했다.
물론 미국에도 "okay, boomer(베이비 부머 세대를 칭하는 말)"로 대꾸할 수 있는데 의역하자면 "네, 다음 꼰대" 이런 느낌이다. (면전에다가 하는 건 아니다... 어이쿠야)
꼰대와 선배의 차이
내게 선배 인턴들이 있었듯 때가 흘러 후배 인턴들이 생겼다. 선배 인턴들 덕에 집 구하는 것, 공항 라이드, 놀러 가는 것까지 여러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후배가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미국 정착에 도움만 주면 됐다. 집은 어느 지역에서 구하는게 좋은지, 어떤 통신사가 좋은지, 어느 계좌가 혜택이 많은지, 한 달 생활비 예산 등 말이다. 하지만 두 명의 새 인턴이 (어쩌다보니) 지금 내가 있는 팀으로 배정받게 되자 업무도 가르쳐줘야 하는 일이 생겼다.
물론 내가 다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사수(new employee를 가르치는 일을 담당한 사람)가 있어서 완전 이 일의 기본 개념 및 프로세스를 가르칠 건 없었지만 기타 직장 생활 팁이나 기본 업무 외의 일들에 있어 나서게 되었다.
인턴, 선배가 되다
알고 있는 일들을 처음부터 가르치는 건 어렵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하는지도 어려운데다가 용어 설명부터 차근차근 이해시키며 업무 과정을 정리해 전달해야하기 때문이다.
설명을 잘 하기 위해서 꼭 깔려있어야 할 명제가 "나는 가르치려는 이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다"였다.
업무를 잘 알고 있다 > 업무 수행의 단계를 짠다 > 단계를 따라 가르친다
가르칠 프로세스를 짰지만 몇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곁다리로 알려줘야 하는 게 업무 수행보다 더 많음
내가 알기에 상대도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생김
이 업무를 왜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 건지 알려줘야 하는 지 고민
어느 정도까지 알려줘야 할지 고민
곁다리로 알려줘야 하는 것
갤럭시 S20의 VoWiFi 통화가 잘 되는지 테스트한다고 하자. 테스트하는 방법은 이미 다 알려줬다. 하지만 통화가 안되어서 테스트를 못한다면?
band가 잘못 잡혔는지, IMS가 등록이 안되었는지, 심카드나 디바이스가 등록이 안되었는지, 단순 좋지 않은 날씨의 영향인 건지 등 말이다. 업무 설명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내가 안다고 상대도 안다고 넘어가는 것
이런 경우가 제일 많다. 아직 출시하지 않은 디바이스는 따로 금고에 보관하면서 테스트를 하는데, 인턴분들에게 금고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든가.. 사내 카페에서 개인 컵을 꼭 사용해야 되는데 그냥 사내 카페에 어떤 음료가 비치되어 있는지만 알려준다든가... 하하하
이 업무를 왜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 알려줘야 하는가
간단하게 말해, 동기부여를 줘야하는가 이다. 즐거운 직장생활 내에 가장 힘든 것은 과중한 업무 강도나 동료와의 갈등 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 동기부여이었다.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지만 지금 내가 전체 업무 중에 어느 위치에 있는지, 이 업무가 우리 팀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여기 이 회사, 미국에서 일하는게 어떤 의미인지 등의 고민이 많았다.
이것 때문에 너무 힘들게 고생했던 것이 생각나 지금 하는 일의 배경과 목적 등의 이야기를 해주는게 좋을까 싶었지만, 뭔가 나의 동기부여를 억지로 떠먹여 주는, 오지랖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회사에서 동기부여 찾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포스팅을 하고자 한다.
어느 정도까지 알려줘야 하는가
나를 대체할 만큼? 그냥 일을 작업할 수 있을 정도로만?
인턴은 아무래도 1년 단위의 대체인력이다 보니 새로 온 인턴들이 새로운 톱니바퀴가 될 수 있게 내가 알고 있는 걸 다 알려줘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일을 할 수 있게만 도와주면 되는지 그 정도를 정하는 게 어렵다.
팁(tips, know how)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도 알려줘도 걸까? 예를 들어, "Sam에게 일을 부탁할 때 꼭 개인 챗으로 연락을 두세번씩 해줘야 해요. 심지어 이해했는지, 그 업무를 완료했는지 확인 작업도 해야해요." 라든가, "A팀의 Jane씨와 친하게 지내는게 좋아요. 우리가 업무하다가 막히면 여쭤볼 수도 있고 일 진행을 좀 더 수월할게 할 수 있거든요." 같은 것 말이다.
정식 업무 과정 외의 팁을 알려주는 게 좋을까? 회사에서는 기본 메일 앱을 아웃룩(outlook)을 사용하는데 메일 자동 분류를 해주는 Rules라는 기능이 있다. 필수로 알아야할 기능은 아니지만 업무의 효율을 높여주는 이런 팁들을 하나하나 알려주는게 좋은 선배일까?
꼰대는 안 물어본 것에 답하고
선배는 물어보는 것에만 답한다는데
안 물어본 것을 알려주고 싶은 건 뭘까.
안 물어본 것을 알려주고픈 건 오지랖
커뮤니티에 오지랖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셀프 판단법이 떠돌았는데
뭔가를 알려줄 때
1) 상대가 이걸 정말 모를까
2) 상대가 이걸 알고 싶어 할까
를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업무를 전달할 때 업무의 목적을 알려줘야하는가와 어느 정도까지 알려줘야하는가 하는 고민이 생길 때마다 위의 셀프 판단법을 적용해 걸러서 알려주려고 하고 있다. 알려줄 때는 꼭 "오지랖일 수도 있는데요 ㅠㅠ "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하하.. 오해받기 싫으니까 ㅠ
모두들 꼰대가 되기 싫어한다
꼰대 이전에는 오지라퍼, 그전에는 설명충, 오글거린다 등 많은 비슷한 뉘앙스의 말들이 있었다. 우리는 점점 딱딱해지면서 그리고 개인화가 중요시되면서 개인의 선과 벽이 점점 높아졌고 그 선과 벽에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로 정의하며 막아서게 되었다.
생활의 지혜를 나누고 관심을 나누고 지식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던 모든 행위에 정의가 내려지면서 나누는 행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본다.
꼰대, 오지라퍼, 설명충, 오글거림은 사실 정도가 지나쳐서 그런 거겠지만 본 의도는 그게 아니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야."의 의도의 말은 절대 아니다.)
이제는 꼰대를 만나 힘들어하는 글보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점검하는 글, 책, 테스트가 나오는 것을 보면 느낄 수 있다.
모두들 처음에는 "어휴 저런 게 꼰대지. 저런 행동하지 말아야지. 저런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였겠지만 점점 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부정하고 싫어했던 행동이 나에게도 나타나는 것을 보고선 급히 "설마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 라며 찾아보니 말이다.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건데 우리가 이미 크게 낙인을 찍어놔서 그런 게 아닐까. 마치 열이 조금 나는 건데 "설마 나 독감 아니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 그래서 인턴 뉴나는 반년 막내로 살다가 반년 선배로 살게 되었다. 꼰대를 욕하다가 이제는 '설마 나도 꼰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직장선배로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내가 하려는 말이 조언인지 오지랖인지 계속 셀프 확인하는 시간이 길어진 선배님이 되었다.
입장이 자연스레 바뀌면서 상황을 보는 눈도, 책임감도, 업무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게 되었다. 인턴이지만 선배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건 귀한 배움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잘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