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과생의 스마트 빌딩 만들기 (1) -
어느 어린아이들이나 그렇겠지만 나 또한 아는 척하는 것을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주워들은 정보에 나의 상상력을 더하고 이야기 살을 덧붙여 아~ 그거? 잘 알지! 가 탄생하는 것이다. 잘난 척을 할 정도의 당당함은 없었기 때문에 은근한 아는 척 기법을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모든 대화에 끼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적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찔러가면서 조금씩 야금야금 지식을 쌓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IT는 내게, 가장 멋진 분야였다. 언어를 전공한 부모님. 고등학교 중국어과. 그리고 상경계열 전공. 이 삼박자를 갖춘 문과생에게 IT는, 비교적 이 분야에 관심이 없는 여자 친구들에게 아는 척을 하기에 가장 멋있는, 아는 척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였다.
시작은 휴대폰과 노트북이었다. 기기들을 구매할 때 들은풍월로 친구들에게 야, 노트북은 말이야. 저장공간이 크고! 그러면서 빠르고 그런 게 좋아. SDD 같은 거! 그런 게 탑재된 걸 사야 돼. 하다 보면 친구 중에 한 명은 꼭 물어본다. "왜 SSD가 좋아? HDD는?"
주워듣기 > 주위에 말하기 > 질문받기 > 찾아보기 의 사이클은 아는 척을 알은척으로 바뀌게 했다. 관심을 갖게 되고 급격한 변화에 놀라게 되고 그래서 더 찾아보게 되는 새로운 사이클이 탄생한다.
대학교 2학년, 복수전공으로 상경계열과 공과계열이 융합된 전공을 신청하게 되면서 IT에 발을 들이게 된다. 아니, 발을 살짝 담그게 된다. 동시에 창업동아리를 했는데, 제주 도보 여행객을 위한 짐 보관 O2O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기획해보는 것을 경험해봤다. 1년의 창업동아리 활동으로 얻은 것은 대상과 좀 아는 것 같다 라는 느낌이었다. 전공수업을 들으니 이해가 좀 빨리 돼. 어려운 부분도 웃으면서 공부할 수 있어. 오! 문과와 이과를 아우르는 융합된 사람!
그 기세를 몰아 작년 2017년 9월, 퍼듀 캡스톤 디자인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공대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는데, 30명 합격자 중에 컴퓨터공학이 전공인 학생이 26명이었더랬다. 하하.
미국 인디애나 주에 위치한 퍼듀대학교
; 퍼듀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과대학을 가지고 있으며 농대로도 유명하다. 공과대학에서 특히 항공우주, 기계, 전기/전자공학과는 미국 내 전공순위 10위 안에 들 정도이다. 닐 암스트롱을 포함한 수많은 우주인들과 에드워드 퍼셀을 포함한 수많은 노벨 수상자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위키백과-
인천에서 시카고 13시간, 시카고에서 웨스트 라파엣까지, 장거리 이동과 엄청난 시차에 적응하기도 전에 팀을 꾸리게 되는데, 나는 이 분야를 선택했다.
Internet-of-Things Infrastructure for a SMART Building
In this project, the team will develop applications for IOT and the infrastructure for IOT for a specific area. In this case we will design an infrastructure to perform management tasks on the Korean Software Square (KSQ) so it is more “self managing”. This will include cleaning robots, temperature and humidity control, human-building, human-robot and human-sensor interfaces, security and any other ideas for making the KSQ an intelligent atmosphere. Technical requirements: Mobile app development, including a number of development languages is possible. Knowledge of networking is desired.
IoT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 빌딩을 위한!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팀에 합류하게 된다.
스마트 빌딩은 건물 스스로 운영, 관리되는 건물을 말한다. 요즘 카카오 미니나 기가 지니에게 "불 좀 꺼줘.", "노래 틀어줘."와 같은 명령어를 하면 조명, 커튼, 창문, 알람, TV 등 다양한 기기들과 연결되는 IoT(사물인터넷) 기술을 통해 인간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건물을 뜻한다.
그 외의 다른 프로젝트로는, 농업 IoT, Counter UAV, 목표 지향 로봇과 센서 기반 팀, HARMS, 빅데이터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스마트빌딩을 고른 이유는 창업동아리 활동은 어플을 기획과 구상단계까지만 해봤기 때문에, 그 끝! 완성본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팀이 꾸려지고 컴공과 1명, 소프트웨어학과 1명, 복전으로 컴공을 선택한 1명,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모이게 된다. 각자 이 팀을 선택한 이유를 이야기하고 4개월 이후에 얻고 싶은 것들을 나누었다. 팀장 오빠가 이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해보자고 했고 나는 갑자기 뜻 모를 긴장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너는 할 수 있는 언어가 뭐야?
으응..? 언어? 어떤 언어를...?
Java, C++, Python, Ruby 뭐 많잖아. 너는 주로 뭘로 해?
엄.. Java를 조금 배웠는데.. 그게 내가 우리가 마치 수학의 정석에서 집합 부분만 열어서 보듯이 거의 뭐... 그런... 무슨 말인지 알겠지?
막 비유를 들어가면서 주절주절 설명하고 그랬지만 말이 길어질 뿐, 결국 개발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2학년 때 만든 어플은 기획까지였다. 기획과 개발은 다른 업무이다. 사업 타당도를 분석하고 마케팅 전략을 짜고 사업 아이템을 생각하는 것이 메인이었던 기획과 달리 개발은 구현이 메인이다. Java라는 단어를 좀 안다는 수준으로는 개발이 불가능하다. 좀 알겠다는 감정과 안다는 사실은 엄연히 다른데, 나는 감정에 취해있었던 것이다. 뜻 모를 긴장감은 사실 내가 감정에 가려져 있어 보지 못했던 사실을 마주하지 못했던 것을 마주하게 되었기에 나온 긴장감이었던 거였다.
'언어도 모르는 주제에 괜히 이 분야에 덤빈 걸까?'
'이제 첫 주를 보내고 있는데 남은 4개월은 버틸 수 있을까?'
'프로젝트에서 하는 용어들을 이해는 할 수 있을까?'
'ㅇ... 엄마...'
답을 하고 난 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점점 밑으로 들어가는 질문이 계속 떠오르게 됐다. 민망한 분위기, 숨고 싶은 마음은 이미 벌려진 일이었다.
그래, 나는. 여기에. 와버렸고. 해야만 해. 무슨 일이든 시작이 필요한 거야. 아마 맨날 울겠지만 흐어어엉.
긍정적인 힘!으로 상황을 이겨내기보다는 상황을 (눈물을 머금더라도) 받아들이는 게 더 큰 힘이 됐다.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은 나를 더 채찍질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각자의 수준과 관심분야를 토대로 역할을 분배했는데, 나는 기획과 경영을 배웠으니 PM(Project Manager) 그리고 가장 관심 있는 분야인 UX/UI Designer를 맡았다.
Slack를 비롯해 Trello, KakaoTalk, Google doc, Github까지 다양한 환경을 구축하고 난 후, 매일 각자 Google Keep에 개발일지를 쓰자는 말과 함께
개발 일지는 매일 해야 하는 디폴트 값이야 하하하
ㄷ... 디폴트 값? 다들 까르륵, 하하하 역시 재밌어! 라며 웃길래 웃을 타이밍인가 보다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항상 습관처럼 해야 하는 기본사항이야 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아는 척하던 문과생은 4개월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비유를 들어가면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고 오렌지 레드와 레드 오렌지의 차이에 예민하고 라즈베리파이가 먹는 건 줄 알았던 내가, 그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기도가 절로 나온 하루였다.
*본 콘텐츠는 Kakao 클래스 멘토링을 받았습니다.